“우리 지금 도장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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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도장 팔아요”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3.10.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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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척수장애인 전문 요양시설
희망재활원의 활기찬 ‘겨울나기’ 준비

경제가 어려워지면 덩달아 추위를 타는 곳이 있다. 각종 사회복지 시설이다.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지금, 이들 시설에 대한 후원의 발길도 눈에 띄게 뜸해졌다.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한기를 몰고 오는데도 말이다. 청주엔 국내에서 유일한 척수장애인 전문 사회복지시설이 있다. 희망재활원(청주시 흥덕구 장성동 198~1)이다. 바로 옆으로 외곽도로가 시원하게 뚫린 이곳에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장애인 40여명과 간병인 등 90여명이 말 그대로 ‘한 가족’을 이루고 산다. 이곳 척수장애인들은 대부분 중증이다. 때문에 1 대 1 간병 및 보호가 필요하고 그러나 보니 서로 가족같은 공동체를 이룰 수 밖에 없다. 장애인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척수 장애인들에게 가을의 햇살을 안기려고 애를 썼다.

줄곧 도움만 받던 이곳 장애인들이 올초 큰 일을 벌였다. 시설내에 20여평의 공간을 개조해 ‘파란들문화사’라는 도장(인장) 사업장을 만든 것이다. 이들이 제대로 움직일수 있는 신체부위는 그래도 양손이기 때문에 도장을 만들어 시설운영에 조금이나마 도탬이 되고자 팔을 걷어 부쳤다는 것. 예리한 칼로 작은 공간에 이름 석자를 새기는 과정은 그 자체가 ‘장인’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컴퓨터와 기계를 사용하지만 불편한 몸으로 한획 한획을 만들어 내는 척수장애인들의 모습이 가히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느 학생이 주는 작은 감동
여기서 만드는 도장은 특이하다. 번거로운 인주가 필요없는 것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카드식 도장이다. 마치 신용카드처럼 지갑에 넣고 다니며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장은 한 개당 1만5000원(소매가 기준) 내외로 팔린다. 그러나 요즘엔 걱정이 많다. 제대로 알릴 기회가 없다보니 가뭄에 콩나듯 들어오던 주문이 그나마 뚝 끊긴 것이다. 어려워지는 경제가 이들의 도장사업에까지 어두운 그늘을 두리우는 것이다. “누가 도장 하나라도 파달라면 당장 생기가 돕니다. 척수장애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스스로의 ‘일’이거든요. 이들이 도장을 팔 땐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즐거움과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야말로 삶에 대한 소속감,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거죠.”

장애인들이 항상 움직일 수 있도록 도장이라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박영옥씨(28·총무담당)는 어느 고등학생 얘기를 하며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한번 이곳을 방문했던 이 학생은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희망재활원표 도장’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안간힘을 쓴다는 것. 이렇게 해서 들어오는 주문량이 기껏 한두개에 불과할 때가 많지만 이곳 척수장애인들에게 큰 ‘희망’을 안기고 있다.

병원이 있어야 장애인이 선다
희망재활원은 비교적 현대식 시설을 갖췄다. 정천수회장을 비롯한 종사자들이 헌신적으로 일하면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모두 장애인 편의시설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비인가시설이다. 인가를 받으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과 전문인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국회 홍재형의원(통합신당. 청주상당)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도 여전히 ‘기준’을 갖추기가 벅차다. 시설이 들어서 있는 땅은 임대한 것이다. 고민 끝에 일단 전문인력부터 양성키로 하고 동아인제대학과 총회신학교의 청주분교장을 열어 신학과와 사회복지학 커리큘럼을 개설했다. 학생들 대부분은 이곳 장애인과 종사원들로, 일정 자격을 따면 바로 이곳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게 된다.

희망재활원에 지금 화급한 과제가 하나 있다. 규모에 상관없이 치료를 전담할 병원을 짓는 것이다. 척수장애인들이 워낙 중증이다보니 병원시설이 극도로 절박하다. 때문에 이수미 홍보이사(34)의 요즘 일과는 후원자를 찾아 거리로 나서는 일로 시작된다.

“장애인들을 먹이고 재우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런 ‘사육’은 장애인 스스로도 거부합니다. 그들이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호흡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골방에 누워 천정만 바라보는 것을 한번 상상해 보셨습니까. 이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돕고 싶고 그래서 작으나마 병원이 하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감히 한번 방문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장애인들을 직접 만나 얘기해 보면 생각도 바뀔 것입니다.”

이수미씨 가족이 전하는 희망재활원의 ‘희망 메시지’
희망재활원 홍보이사 이수미씨는 아직 미혼이다. 3년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 행정총무 일을 보던 그녀는 “장애인들을 돕다가 아예 그들과 결혼했다”고 말했다. 과년한 그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걱정이 사라졌다. 어머니(72)와 남동생 용구씨(30)가 이곳 자원봉사로 합류한 것이다. 일부러 요구한 것도 아닌데 어느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병치레가 유난히 많던 어머니는 평생 약으로 살았는데 지금은 아니다. 이곳 주방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이후 몰라보게 건강이 좋아졌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용규씨도 이곳에 들어온 뒤론 생활이 달라졌다. “매사를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너무 밝아졌다”고 자랑하는 누나의 표정이 환해 보였다. 이수미씨는 지금 큰 꿈을 꾸고 있다. 희망재활원을 척수장애인들의 영구적인 터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이곳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장애우가 많지만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마음이 너무 아프다. 특히 일반 가정의 골방에 방치돼 있는 척수장애인들을 접하면 한없는 회한이 몰려 온다.

그들의 휑한 눈망울과 등에 나 있는 욕창이 나에겐 비수처럼 다가온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이들을 보살펴야 하지만 아직 현실 인식이 너무 부족한 것같다.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같은 비인가 사회복지시설이 눈총을 받는 것도 안타깝다. 이 분야엔 자신을 희생하는 훌륭한 분들이 많다. 언제까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힘이 되는 한 이들을 돕겠다.”(043-295~9010, www. powerwheel. or.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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