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대 총선 때 지역의 유능한 변호사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평소 많은 공익적 활동으로 신망이 두터웠던 그는 선거전 초장부터 유권자의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주변에선 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단도 거리낌없이 흘러나왔다. 이에 부응하듯 이 변호사는 선거전 내내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현장을 누빈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결과는 초라했다. 당선은커녕 고작 몇천표로 간신히 면피하는 수준에 그쳤다. 한참 뒤에 사석에서 만난 그는 "숱한 사람들을 만나 악수할 땐 모든 것이 내표로 보였는데 막상 끝나고나니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 후회는 않지만 잠시동안 뭔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16대 총선에선 역시 유능한 출향인사가 고향에 내려 와 청주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어렵게 공부해 역동적인 삶을 일군 그는 처음 보는 이에게도 분명한 철학과 확신에 차 보였다. 성공한 직장생활을 거쳐 성공한 벤처기업의 책임자로 있던 그는 정치초년생답지 않게 선거전략이 과학적이었고 치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주변엔 사람들이 꼬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캠프에선 투표날이 임박할 즈음 조심스럽게 당선권까지 거론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황당했고 이 인사는 한참동안 정신적 공황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제발로 사무실에 찾아 와 표를 찍겠다던 사람만도 이보다는 많겠다"는 당시 캠프의 푸념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역시 16대 총선 때 뒤늦게 출마, 센세이션을 일으킨 김진선씨가 선거 후에 던진 말은 더욱 실감난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면 절대 선거를 치를 수가 없다"는 그의 말은 정치판에서 빚어지는 각종 '형이하적 현상'을 빗댄 것이다.  4성장군 출신으로 평생 규격잡힌 생활에 익숙했던 그로선 협잡과 음해, 계략이 난무하는 정치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평가한 우리나라 선거문화는 "신물난다"였다. 이들 세 사람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다름아닌 현실정치의 몰가치성이다.

 그러나 이런 몰가치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교훈을 안긴 적이 한번 있다. 굳이 연도를 말하지 않더라도 알만한 사람은 잘 안다. 청주권에서 돈을 쏟아붓고도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못한 인사가 있다. 그가 지역구에 퍼부었다는 수백억원의 돈은 전국구(비례)를 몇 개 사고도 남았을텐데 말이다. 중앙당의 핵심들에게 수십억원대의 현금을 바치고, 이름만 걸친 당원들에게도 거액을 안겼지만 아이러니컬하게 형이하학적인 선거도 이런 사람은 기피했다.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인사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기성 정치인은 물론 신인들의 움직임도 지금부턴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한나라당이나 신당에 쏠린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의 득표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정치에서 이런 쏠림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류에 따른 인물이동은 반드시 실패한다. 총선 때마다 당이 자주 소멸하는 이유는 문제의 당이 한 때는 명분없는 '쏠림'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또 정치 룸펜이 대거 쏟아질 조짐이다. 지금 이들은 '한 건'을 잡기에 혈안이 됐다. 

 정치는 신념이라고 했다. 이럴 때 형편없는 자민련을 택해 깃발을 올리는 정치신인들은 없을까. 이런 모습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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