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노사관계는 어떤 것이며, 이를 위해서 노와 사가 보여할 모범적 행동양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최근 노조결성 사태와 노조결성이후 본격적인 협상테이블에 올려질 임금 및 단체협약안을 놓고 월드텔레콤 회사측과 근로자간에 벌이고 있는 일련의 공방은 우리에게 좋은 '학습자료'가 되고 있다. 아무리 탄탄한 재무구조와 최첨단의 기술력을 갖춘 회사라고 할 지라도 노사관계가 올바로 정립돼 있지 않으면 그 기업이 공들여 쌓아 온 성취와 명성은 하루 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근로자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새해벽두인 지난 1월6일 첨단 레이저 픽업을 생산하는 청주산업단지내 유망벤처기업인 월드텔레콤에 파문이 던져졌다. 여직원 중심의 생산현장 인력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나선 것이다. 다만 별도노조 형태가 아니라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연맹 대전·충북지부 소속 '지회'로 노동조합이 조직됨으로써 회사가 설립된 이후 외견상 평화(?)를 구가하던 노사관계에 돌연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금속노조 월드텔레콤 지회장으로 선출된 금선아씨는 "경영진측에서 그동안 종업원들의 존재를 무시해왔으며 회사의 공동운명체인 종업원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일관해 왔다"며 "근로자의 권리와 정당한 처우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금선아 지회장은 "한달 30일동안 일요일 없이 8시간씩 근무하고 하루평균 2시간의 잔업(연장근무)을, 그것도 야간조로 편성돼 일을 해야 51만원의 기본급에 특근수당을 합쳐 최고 월 110만원을 받을 수 있다"며 "이처럼 열악한 임금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노조의 주요 목표"라고 말했다.

점심시간도 일방적으로 변경

"지난 4일에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어요. 제가 소속된 부서는 조정평가부인데 우리 부서의 점심식사시간이 사전 아무런 설명이나 양해없이 12시에서 12시 50분으로 전격 바뀌어 버렸습니다." 금선아 지회장은 "회사측에서 노조 지회장이 소속된 부서의 점심시간을 마음대로 변경하는 등 일방통행식 행태를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은 그동안 생산현장의 근로자들을 얼마나 무시해 왔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며 "노조의 1차적 요구사항은 회사측에서 우리(노조)를 인정하고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것이며 더불어 회사측에 제시한 평균 13.57%의 임금 인상을 주내용으로 한 임단협안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대해 월드텔레콤의 경영진측은 "그동안 생산라인 인력들과 원활한 대화채널을 유지하지 못한 감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회사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임을 뻔히 아는 근로자들이 임금의 대폭인상을 요구하며 노조 결성이란 최강의 대응책으로 나서는 것은 너무 한 것 아니냐"고 우려를 나타냈다.

"제3자하고 협상하란 말이냐"

"점심시간의 조정문제만 해도 그렇다. 사실 아주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노조측에서 음모론적 시각에서 비난하니 곤혹스럽다. 대다수 직원들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데 이는 회사의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으로 노조측에서도 이런 점을 충분히 감안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월드텔레콤의 권대우 총무이사는 "회사측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노조 지회가 사측과의 교섭권을 갖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섭권은 금속노조연맹 대전·충북지부가 쥐고 있는데 향후 펼쳐질 임단협 과정에서 회사사정을 모르는 외부조직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게 정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극심한 노-사 상호불신

그러나 노조결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월드텔레콤 사태는 그동안 진정한 의미의 노사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온 회사측에 보다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칼자루(힘)는 사측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어쨌든 기업의 양대 축인 노-사가 신뢰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사소한 문제에도 갈등과 오해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사례를 월드텔레콤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특히 사세확장과 성장 제일주의의 기업경영으로 그동안 권리를 유예해 온 직원들에게 평소에 동반자에 걸맞는 대우를 하면서 경영정보는 물론 성과를 조금씩 나눠왔다면 최근과 같은 노사대립 양상으로까지 발전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현재 월드텔레콤 회사측은 종업원들이 노조결성이라는 카드를 기습적으로 꺼내들자 뒤늦게 노사협의회를 결성한다며 허둥지둥하는 모습이다. 우리로서는 노사 양측이 서로 어떤 관계를 설정해 나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전도가 양양한 월드텔레콤이 무한한 기회를 앞에 두고 내부의 걸림돌인 노사갈등으로 좌초하는 상황만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성숙기업보다는 아직은 성장단계에 놓여있는 '청소년 기업' 월드텔레콤의 노사 양측이 무분별한 행동으로 취약하기 짝이 없는 공동의 터전인 어항을 깨뜨려 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무노조 ‘신앙’ 삼성 주문 줄이지 않을까
위기감 고조속 홍용성사장은 3주째 외국체류중
삼성의존도 절대적...금융부채 많은 게 단점

월드텔레콤은 차세대 광디스크 저장기술로도 불리는 DVD 등에 채택되는 레이저 픽업 전문생산제조벤처기업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전기의 지정협력업체이다. 생산제품 전량을 삼성전자에 OEM으로 납품하는 이 회사는 95년 설립된 이래 3년만인 98년 100억, 다시 1년만인 99년에는 600억원의 매출액을 올릴 정도로 그야말로 비약적 성장을 거듭해 왔다. 이 때문에 2000년에는 충북도 초일류벤처기업 선정, 국무총리상 수상, 신노사문화 우수기업 선정, 철탑산업훈장 수상, 코스닥 등록 등 괄목할 일지(日誌)를 사사에 기록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월드텔레콤은 이런 성공을 밑거름으로 99년 중국(광동성 동관시 화강진 판호촌)에 이어 2000년 6월에 필리핀(로자리오 경제특구)에 현지 생산공장을 설립하는 등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속된 말로 속도 무제한의 질주를 해 온 것.
그러다 이번에 내부엔진에 이상이 발생하면서 최대위기를 맞고있는 월드텔레콤은 무노조를 신앙처럼 고수하는 원청기업 삼성이 향후 주문물량을 줄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측에서 현재 월드텔레콤으로 일원화돼 있는 협력선을 다원화하겠다고 밝혔다는 소문이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며 우울해 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경우 상반기 내내 거의 일감이 없다시피하다 하반기에 주문이 밀리면서 잔업까지 했는데 직원들이 이런 사정을 잘 몰라주는 것 같다"며 "만약에 이번의 노조사태로 주문이 줄어들면 회사는 결정타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월드텔레콤은 지난해 1500억원대의 매출액을 올렸지만 창업당시 진 1000억원대의 금융부채로 상당한 원가부담을 안고 있다. 그러나 월드텔레콤의 홍용성사장은 노조설립의 후파장이 이처럼 심각하게 번져나가고 있는 데에도 해외공장의 시찰과 생산독려 등을 이유로 3주째 외국에 체류중이어서 주위를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 임철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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