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충청타임즈가 특종으로 취재 보도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라는 충북체육관(忠北體育館) 휘호의 행방을 찾아냈습니다. 오래 전 소각 직전 상황에서 한 공무원에 의해 수습돼 보관해 오다가 신문기사를 보고 당국에 되돌려 주었다지요. 며칠 전 도청 홍보관에 들렀다가 사료관이라는 곳이 있어 보았더니 전시돼 있는 자료의 양이나 내용이 빈약하여 아쉬웠습니다.

5·16으로 들어 온 군인들이 문서보관소를 청소한다고 다 태워버렸다니 남아 있는 사료가 별무하겠지요.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관할부서에 문의한 바 사료수집에 노력하고 있다 하니 기대가 됩니다.

대통령의 휘호나 행정서류등속 사료적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잘 보존하는 것은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노력을 보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청주는 옛적부터 아주 중요한 내륙지방 거점도시로서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문화도시 아닙니까. 오랜 역사를 증거하는 유적이 적잖이 있는데, 청주 남석교가 그 하나입니다. 남석교는 BC 57년, 신라 박혁거세 즉위년(漢 宣帝 五鳳 元年)에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조충현이 지은 하주당시고(荷株堂詩稿, 1894년) 등 여러 문헌에 나타나는 기록의 신빙성이 희박하다는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남석교에 관한 문헌을 조사 연구하고 남석교 표석과 사적비를 찾고, 거기에 적힌 기록을 알아내는 노력을 왜 기울이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기록대로라면 정북동 토성 다음으로 오랜 문화재이고,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대로 고려시대, 아니 조선시대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연대는 물론 규모나 구조 등 매우 귀중한 문화유적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남석교는 일제에 의해 매몰된 지 80년 안팎, 광복 60년이 넘도록 그냥 그렇게 지하에 갇힌 채로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매몰을 면한 법수(法首)를 그냥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명 고려견상(高麗犬像)이라고도 하는, 이 아름다운 돌 조각상은 무심천의 수로변경으로 남석교가 매몰될 당시 도지사 관사와 동공원으로 각각 2기씩 이전했다고 합니다.

남석교 석조난간의 법수는 암·수 한 쌍씩 짝을 이루고 있는데, 1951년 어떤 연유로인지 동공원에 있던 것은 우암산 용암사로 옮겨졌고, 도지사 관사로 옮겼던 한 쌍은 충북대학교박물관 야외전시장에 한 점만, 그것도 머리부분이 파손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짝을 이루고 있던 하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지난 가을, 생태하천 기행으로 찾았던 수원천 화홍문(華虹門)에서 남석교 법수와 아주 흡사한 양식의 해태상(해설사의 설명)을 보고 우리의 고려견을 떠올리면서 문득,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싶었습니다. 남석교는 오래된 만큼 여러차례 보수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시대적으로 가장 낮은 연대의 기록, 정조 19년(1795년)에 청주목사 안정탁이 개건(改建)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1794~1796년간에 축조된 화성에 서 있는 해태상과 남석교 고려견은 개와 해태라는 것만 다를 뿐 석주의 양식은 아주 흡사했습니다.

어쨌거나 행방불명된 남석교 법수 하나를 되찾아, 남석교가 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적당한 장소에 4기 모두 본래모습대로 한자리에 서 있게 했으면 싶습니다. 바야흐로 법치시대인데 남석교의 법적 소유자는 누구인가요 주인이나 알고 지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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