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수업 가장해 일제히 7교시 수업 강행
등교시간 당기고 郡지역 학교 야간자율학습도

<학력신장 그 끝은 어디인가>
사교육 과열화를 막고 학교시설을 이용해 다양한 특기적성교육을 구현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이른바 ‘방과 후 학교’의 운영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파행으로 얼룩지고 있다. 도내 모든 중학교가 방과 후 학교를 가장한 7교시 보충수업을 시행하고, 1교시 수업시간까지 앞당기면서 사실상 ‘0교시 수업’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는 지난해 10월 일제고사가 부활한 이후 일반화된 현상이다.   

▲ 학력신장이라는 미명 아래 특기적성교육을 표방한 방과 후 학교가 중학교에서 보충수업으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 자료사진
충북도교육청 역시 이런 파행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지도·감독하기보다는 ‘학력신장’이라는 미명 아래 사실상 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이기용 충북도교육감은 지난해 10월 실시한 학업성취도평가 결과 ‘충북이 전국의 시·도교육청 가운데 최하위에 머물렀다’며 지난 2월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상 대(對)도민 사과를 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각 학교에 전권을 맡겼다’는 논리로 방과 후 학교 파행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충북도교육청은 이를 극구 부인했다. 홍순규 학교정책과장은 “지난해 4·15 학교자율화조치 이후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방과 후 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학업성취도평가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다보니까 일선 학교에서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부쩍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전교조 충북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학교별 사례를 조사한 결과 청주시내 동부지구 9개 중학교의 교감들이 모여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5개 과목 위주로 일주일 내내 7교시 보충수업을 진행하기로 뜻을 모은 정황이 확인됐다”며 “다른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교육청의 적극적인 의지가 없다면 이처럼 획일적인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도내 중학교의 파행사례를 모아봤다. *기사의 영문이니셜은 학교명 또는 성명과 관계없이 임의 사용한 것임.

<사례1> ‘아니오’ 없이 YES만 가능한 동의서
보충수업 안할 경우 강제 자율학습 피할 수 없어

도교육청 학교정책과에서 일선 중학교에 내려 보낸 ‘2009 방과 후 학교 운영계획’에 따르면 ‘수요자의 선택에 따른 자율적인 선택을 원칙으로 하며, 다양한 요구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돼있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청주 A중학교의 경우 일단 학생들의 자율적인 선택에 맡겼더니 교과 쪽으로 보충수업을 듣겠다는 인원은 단 2개 반에 불과했다. 결국 교장이 어머니회에 참석해 이해를 구했고, 다시 동의서를 받아오도록 했다. 문제는 말이 좋아서 동의서일 뿐, 학과보충과 자율학습 가운데 무조건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원하지 않음’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A중 2학년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 P씨는 “정규수업을 ‘흰 우유’라고 치면 방과 후 학교는 다른 음료를 선택하거나 아예 마시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 측이 보내온 동의서는 흰 우유를 먹고 있으니 초코 우유나 딸기 우유 가운데 하나를 무조건 더 먹으라는 얘기와 다를 게 없다. 이게 무슨 동의서냐”고 분개했다.          

<사례> NO한 학생, 수업시간에 교감이 설득  
성적 우수한 일부 학생, 그들만의 공부패턴 인정

청주 B중학교의 사례는 보다 적극적이다. 이 학교의 경우 교감이 교사들에게 최대한 보충수업으로 유도하도록 당부했기에 이미 학급 차원에서 사전 정지작업이 이뤄졌다. 그야말로 학급 별로 2,3명 정도만 자율학습을 희망했을 정도로 이탈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이와 같은 ‘옥에 티’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교감이 수업시간에 자율학습을 선택한 학생을 일일이 불러내 설득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B중학교 J교사는 “학생들로부터 ‘선생님들이 월급을 더 받으려고 보충수업을 유도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때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었다”며 “7,8교시 가운데 평균 6,7시간 수업을 해야하는 교사들도 힘들다. 출장 등 과외 업무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J교사는 또 “일부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은 ‘자기만의 공부패턴이 있다’는 논리로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을 빼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사례3> 장학지도 시 장학사 주관 시험계획도 
교사들 “실제라면 교육과정편성권 무시한 처사”

C중학교 등 청주시내 3,4개 학교는 이미 지난해부터 교과 중심의 특기적성교육을 시작했다. 올해는 틀이 잡혀 전교조 교사가 담임을 맡은 일부 학급을 제외하고는 100%에 가까운 학생이 획일적으로 보충수업을 지원했다.
C중은 학력신장을 위한 특단의 조치로 교사들에게 ‘교장과 교감이 시간을 나눠 수업진행 상황을 감독하겠다’는 방침을 공표한 상태다. C중 교사들은 또 직원회의 때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C중 교장이 교육장이 주관한 교장회의에서 나온 얘기라며 ‘앞으로 장학협의(과거의 장학지도를 달리 일컫는 말) 때 장학사가 교실에 들어가서 교육청에 직접 출제한 문제로 불시에 시험을 볼 예정이다. 성적향상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장학협의의 중점사안’이라고 강조했다는 것.

C중 K교사는 “평가는 가르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해 자신들이 준비한 시험지로 시험을 본다는 것은 교사들의 교육과정편성권을 무시하는 심각한 처사”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례4> 군 단위 학교 밤 10시까지 ‘타율학습’
사실상 0교시 부활에 야자까지 ‘피곤한 학생들’ 

이처럼 도내 거의 모든 중학교들이 7교시 보충수업을 실시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자습을 실시함에 따라 하교시간도 오후 4~5시로 늦춰졌다. 그나마 7교시에 수업이 끝나면 다행이고, 심지어 청원군의 D중, E중학교는 각각 8,9교시, 8교시를 운영하고 있다.

군 단위로 갈수록 학원 등 사교육 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학교에 붙잡아두는데, 전교조 충북지부의 조사 결과 밤 9시30분,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학교도 생겨났다. 그야말로 타율학습인 셈이다.

더 큰 문제는 7교시 수업을 실시하게 되면서 등교시간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학급조회를 거쳐 오전 9시10분~20분에 시작하던 1교시가 학교에 따라 8시40분~50분으로, 20~40분 정도 빨라졌다는 것이다. 청주시내 F중학교 Y교사는 “고등학교에서 문제가 됐던 0교시가 이제는 중학교에서도 변칙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고 사교육 열기가 사그라지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만 힘들고 피곤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