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식(시인, 흥덕문화의집 관장)

 참으로 지겹다. 요즘 비오는 것이 이렇게 지겹게 느껴지는 것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올해의 추석은 이렇게 지나갔다. 우울한 이야기와 비가 추적거리는 가운데 그렇게 흐르는 세월인양 두둥실 ...
우리의 농민 한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추석에 먼 이국 땅인 멕시코 칸쿤에서....

추석날 아침 TV에서 흘러나오는 메마른 아나운서의 멘트에 나는 깜짝놀라 자리를 일어나고 말았다. 갑자기 둔기에 얻어맞은 양 멍하니 화면만 처다 보았다. 나는 그가 왜죽었는지, 어찌 죽었는지, 그의 죽음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따지고 싶진 않다. 다만 내가 그 상황 속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스스로의 자괴감이 물결처럼 나를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도 이 땅의 현실이 우리에게 배를 가르고, 투신을 하고, 신나를 온몸에 두르고 불꽃으로 살아가기를 강요하는가. 피하고만 싶은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 땅의 농민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어미 아비가, 우리의 친구들이 절망하는 모습을 나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쉽게 세상을 이해하고 타협해 온 것은 아닌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다 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는 것인지.

추석날 아침, 그렇게 허둥대며 제사를 마쳤다. 그의 죽음을 가슴으로 애도하며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의 농촌 현실을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또 며칠후면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또 다른 사건에 관심가지며 술안주 감으로 씹고 있을 줄도 모른다. 죽은 사람만 억울할 따름이다. 그도 아내와 자식이 있을 것인데 이 가을날 생죽음을 했으니 어찌 서럽지 않겠는가. 여기에 무슨 말이 필요한 것인가. 이 더러운 세상 하늘에 대고 욕이나 한번 걸판지게 내지끄리는 수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얼마나 더 죽음의 향연이 계속되어야 할지도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세계경제의 구조적인 모순이니, WTO니 하는 것을 나는 잘 모른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먼산바라기로 외면해 온 우리의 그 비겁함이 우리의 농민 한 사람을, 아니 우리의 농촌 현실을 죽인 것이라 생각한다. 귀중한 목숨을 앗아간 이 사태는 비단 이경해씨의 죽음이 아닌 우리 영세 농업인들의 죽음이며 우리 농업의 죽음인 것이다. 우리의 농촌이 이제는 더 이상 생명을 키우고 가꾸는 아름다운 고향이 아니다.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버려진 곳이 되어버렸다. 비통하고 애절한 이 죽음을 앞에 두고 할말을 잊는다.

들판에 나서본다. 벼에서 꽃이 핀다. 추석, 풍요로워야 할 우리의 가슴에 설움 꽃이 맺힌다. 우울하고 지겹게 내리는 이 비에,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에, 그리고 우리의 무관심에 우리 농촌이 죽고 농민이 죽었다. 남의 일같이 여기는 냉소의 비가 하염 없이 내린다. 벼락맞을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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