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10주년을 축하하며 / 도종환 ( 초대발행인·시인 )

충청리뷰가 벌써 창간 1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병무청 옆에 처음 손바닥만한 사무실을 내고 난로에 시린 손을 쪼여가며 편집계획을 논의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참 겁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문사에서 노조 만들려다 쫓겨나 자기들 주머니 털어 모은 돈으로 의기투합하여 신문사를 냈으니 지금 시작하라면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제적인 주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젊고 때묻지 않았습니다. 참신하고 힘이 있었습니다. 편집과 기사 작성에 자율성을 가질 수 있었고, 그래서 기사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 자율성과 기자정신과 만나 금기시 하던 영역을 넘어서는 기획 취재들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충청리뷰가 우리 지역에 있어서 내가 충북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속으로 참 기뻤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며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동안 옮겨다닌 사무실의 주소가 그걸 말해주기도 합니다. 지난 10년, ‘결 고운 글’은 마음먹은 만큼 쓰지 못했지만 ‘올곧은 말’은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 겪은 큰 어려움도 올곧은 말을 해온 충청리뷰 정신이 부딪칠 수밖에 없던 고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만도 비굴도 하지 마라

충청리뷰 창간 10년을 맞으며 창간 시절 어려움을 함께 겪어온 사람으로서 이런 자리를 빌어 몇 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신문이 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모든 이들에게 비난받는 신문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의로운 이들에게 칭찬을 받고, 의롭지 않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는 신문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봄비가 기름 같으나 행인은 그 진창을 싫어하고 / 가을달이 휘영청 밝아도 도둑질하는 자는 그 밝게 비치는 것을 싫어한다(春雨如膏 行人惡其泥 / 秋月揚輝 盜者憎其照鑑)”고 했습니다. 사람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야할 의로운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봄비 같이 되고 가을 달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않는 신문이 되어 주십시오. 이 말은 『잡보장경』에 나오는 말씀을 빌어 드리는 말입니다. 언론은 작으나 크나 권력입니다. 그래서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분노할 줄 알되 의로움이 바탕을 이루어야 하며, 미워할 줄 알되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비정상적이고 부패하고 타락한 것들을 바로잡으려 하되 신문의 마음이 공평하고 삿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 기사는 옳은가? 끊임없이 확인해야

그러기 위해서는 신문을 만드는 이들의 세계관이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간디는 “원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상업, 노동 없는 재산,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양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신앙”, 이 일곱 가지를 사회 범죄라 했습니다. 우리가 정치, 경제, 사회의 여러 문제를 바로잡으려 할 때 우리도 이런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이 사회가 잘못 가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문이 사나워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나약해서도 안됩니다. 신문을 위협하는 힘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하며 객기가 아닌 정기를 지녀야 합니다. 노신 선생은 “용감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뽑아들고서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달려들고 비겁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빼어들고서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달려든다.”고 한 바 있습니다. 진정한 용기를 지니고 언제나 당당하되 겸손한 신문이 되어 주십시오.

기사를 쓰기 전에 열 번 스무 번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져보고 판단이 설 때 글을 써야 합니다. 아무리 스치는 칼이라도 무고하게 다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칼을 잘못 쓴 칼인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기사는 언제나 칼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합니다.

바른 길을 가야합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길은 올바른 곳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만나야 길입니다. 신문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면서도 권력에 아부하고, 곡학아세하며, 정도가 아닌 편법의 길, 이익을 보고 따라가는 샛길로 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길이 아닌 길일 선택해서 간 사람들은 그 선택으로 인해 반드시 제 이름을 더럽히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판 함정에 빠져 참담한 지경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인간적이고, 정의롭고, 평화롭고, 자연친화적이며, 공동체적인 연대가 살아 있고, 지역적이며, 작고 따뜻하고 검소한 삶을 살면서도 마음이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신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하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 삶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오늘 내가 가난하게 살아도 태산 같은 자부심을 느끼는 충청리뷰의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창간 10주년을 축하하며 앞으로 10년도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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