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대표이사

언론보도 가운데 대중적 관심이 높은 것은 사람에 관한 기사다. 자신과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본능적인 호기심을 바탕에 깔고 있다. 지역 신문에 '호사가들'이라고 표현되는 사람들이 바로 사람 정보를 생산해내는 '말공장'이라 할 수 있다.

청주처럼 역사가 오랜 도시일수록 토박이들의 연고성이 강해 사람에 대한 소문에 민감하다. ‘몽둥이보다 소문에 맞아 죽는’ 동네이다 보니 은인자중(隱忍自重)하는 기질이 완연하다. 나서지 않고 튀지 않는 이같은 기질은 충청도 양반의 미덕으로 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막판에 튀어 나서는데, 이미 상황을 돌이키기에 역부족인 경우를 당하게 된다. 없으면 뺏어서라도 제 몫을 챙기는 약삭빠른 세상에 은인자중은 일을 그르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지역의 핫이슈로 뜨겁게 달아오르다 사라져버린 두 사안이 있다. 청주상공회의소 회장 선거를 둘러싼 폭로사건과 충북도 챔버오케스트라 지휘자 선임을 둘러싼 진실공방이다. 올해 청주상공회의소 회장선거는 이태호 회장의 4선 연임을 두고 진작부터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뚜렷한 대항마가 없어 지지부진하던 상황에서 오창산단 오석송 대표가 급부상했다. 하지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오 대표는 돌연 출마포기 기자회견을 하게된다.

덕분에 이 회장은 만장일치로 추대됐고 청주상공회의소 역사상 처음으로 4선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불과 1주일만에 오 대표는 충격적인 내용을 폭로하게 된다. 그는 "(이 회장이)선거직전 부회장직을 제의하며 출마포기를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난 장소와 불출마 기자회견후 문자통화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해 신빙성이 매우 높았다. 사실이라면 명백한 불법선거운동에 해당되기 때문에 선거무효까기 거론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건폭로뒤 2일만에 이 회장이 오 대표의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사과하는 형식으로 사태는 일단락되고 말았다. 폭로내용의 진위조차 가려지지 않은채 '지역경제계의 분란'을 우려한 지역 정관재계의 '은인자중' 덕분에 덮어진 셈이다.  결국 오 대표가 뒤늦게 빼든 반전의 칼은 허공만 가른채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충북도 챔버오케스트라 지휘자 공모는 1차 지원자 가운데 적임자가 없다며 2차 공모를 할때부터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최종 선임된 오선준씨의 불가리아 대학 석사학위 진위여부가 논란의 핵심이었지만 도 주무과장과 오씨가 처남매부 사이란 점도 의혹을 샀다. 특히 정우택 지사가 2년전부터 취미로 삼은 섹스폰 연주의 개인교습 강사가 오씨였다는 사실도 의문을 부채질했다.

언론의 의혹보도와 시민단체의 자진 사퇴 주장이 제기된 상황에서 지휘자 공모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준원 교수가 공개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오씨의 학위는 단기연수증에 불과하다. 이런 식이라면 왜 공모를 했는지 모르겠다“ 며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섰다.

하지만 충북도는 정 지사, 주무 과장으로 이어지는 연고관계의 의혹에 대해서는 함구한채 불가리아 석사학위에 대해 현지 대학의 사실확인을 받는 것으로 일단락지었다. 지역 예술단체 또한 ‘지역예술계의 분란’을 우려해 ‘은인자중’ 말을 아꼈다.

심사위원이 이의제기하고 경쟁후보가 폭로해도 상황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런 사안이 유야무야 넘어가는 풍토도 문제지만, 정작 말해야 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 더욱 안타깝다. 충청도의 ‘은인자중’ 기질이 앞으로 또 어떤 변칙과 편법을 낳게 될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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