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곧은 충북도민 의식이 독립언론의 10년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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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곧은 충북도민 의식이 독립언론의 10년을 지켰다"
  • 충청리뷰
  • 승인 2003.09.16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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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본에 맞서 싸운 월간·주간지 10대뉴스
사원이 주인인 언론사…인터넷 ‘오마이충북’ 결합, 새 모델 제시

독립언론 (주)충청리뷰가 창사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93년 9월, 직원들의 종자돈 1500만원으로 설립된 충청리뷰는 자본금 4억5000만원의 사원 지주회사로 탈바꿈했다. 자본에 예속되지 않은 독립신문의 전형을 지역 최초로 만들어낸 것이다. 제도권 편입을 거부하며 걸어온 지난 10년은 고단한 여정이었다. 지방 권력의 탄압, 자본의 유혹이라는 담금질 속에 버텨온 것이 오늘의 <충청리뷰>라고 할 수 있다.

창사 10주년에 얽힌 고난의 역사를 낱낱이 풀어내기는 쉽지않다. 회사의 연보를 통해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아울러 <충청리뷰>의 월간시대 4년과 주간시대 6년을 통털어 주요기사를 재정리해 본다. 지면에 오른 기사들은 <충청리뷰>의 기록물이자, 우리 지역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파묻힌 진실을 밝혀낸 탐사보도, 성역을 가리지않는 과감한 보도, 소외계층의 눈물을 닦아주는 현장보도로 나눠 10년의 기록을 간추렸다. 또한 지난해 전국적 이슈가 됐던 충청리뷰에 대한 검찰 탄압수사의 전후과정을 덧붙였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반성과 아쉬움도 적지않다. 언론인의 치열성과 보도의 의제설정 기능이 얼마만큼 발휘했는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독립신문의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며 독자 여러분의 평가를 받고자 한다.

회 사 연 보
- 1993. 9 충청리뷰사 사업자 등록
- 94. 1 시사월간지 <충청리뷰>
  창간호 발행
  초대 도종환 발행인
- 94, 10 주식회사 충청리뷰사
  법인등록 
  윤석위 대표이사 발행인
-  97. 8 주간신문 전환에 따른 도민주
   공모 및 증자
-  97. 9 주간신문 <충청리뷰> 전환
    김영회 발행인 취임
-  00. 2 변근원 편집인 취임
-  02. 12 한덕현 발행인 취임
-  03. 4 인터넷신문 <오마이충북> 창간
    민경명 발행인 취임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보도연맹원 집단학살 현장 집중취재

94년 6월 한국전쟁 발발 51주년을 맞아 도내 대규모 양민학살 사건을 특집기획으로 취재했다. 당시 유가족인 정은용옹(81·노근리대책위원장)이 발간한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기사마감 막바지에 입수해 긴급취재하게 됐다. 노근리 쌍굴에서 아들, 딸, 형수 등 4명의 가족을 잃은 정옹은 60년대부터 진상규명을 위해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취재진은 정옹의 실화소설과 현장방문, 생존자 면담을 통해 국내 언론 가운데 최초로 미군 양민학살 사건을 심층보도하게 됐다.

하지만 한겨레신문, 월간 <말>, 시사저널이 후속적으로 사건을 다뤘을 뿐 다른 언론매체에서는 사실보도조차 외면했다. 결국 99년 AP통신의 보도이후 미군에 의한 전쟁범죄로 부각되면서 국제적인 핫이슈로 떠올랐다. 국내 언론도 뒤늦게 취재경쟁을 벌였고 AP통신 취재진은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충청리뷰>는 진실규명을 위해 50여년을 싸워온 정옹을 ‘9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고 패를 전달했다.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억울하게 숨진 보도연맹원 집단학살에 대해서도 94년 6월호에 심층보도했다. 청원 오창면 양곡창고와 북이면 옥녀봉, 남일면 쌍수리 등 주요 학살현장을 목격자를 통해 확인했다. 해방직후 좌익단체 가입전력을 이유로 전시 예방학살 차원에서 군경에 의해 자행된 보도연맹원 집단학살은 유가족에게 연좌제라는 이중고를 덧씌우기도 했다. 당시 현장확인 통해 추정한 도내 희생자만 2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주교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지난해 10월 ‘한국전쟁 전후 충북지역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또한 괴산군 사리면 보도연맹 피해자 유가족 모임에서는 오는 10월초 도내 처음으로 희생자 위령탑 건립식을 가질 예정이다.

그랜드골프장 ‘사유화’의 진상,
청주 원프라자 폭력매입 의혹

86년 교통부의 승인을 받아 건설된 청원군 오창면 그랜드골프장(전 청주골프장)은 당초 지역 경제인들의 요청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받아들여 성사됐다. 당초 서울 25명, 청주 25명 주주를 모아 공익사업의 취지에 따라 운영키로 했다. 하지만 서울쪽 주주확보가 여의치않은 가운데 임광토건 임광수회장이 출자몫을 늘이면서 사실상의 대주주가 됐다. 최종적으로 60명의 주주가 2000만원씩 출자해 12억원의 자본금을 마련했으나 골프장 건설자금이 부족해 임회장에게 차입해 쓰기도 했다.

87년 5월에는 개인당 1000만원씩 증자를 결의했으나 임회장과 불신이 싹튼 청주 주주들이 거부해 임회장이 2억원의 실권주를 인수해 지분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89년 개장이후 금융부담으로 인해 적자운영을 면치 못했고 법인설립 당시 규정한 서울, 청주 이사진 동수선임 문제 등으로 임회장과 청주 주주들 사이에 갈등이 확대됐다. 결국 그랜드골프장은 당국의 내인가 조건인 ‘수익금의 공익사업 환원’이라는 취지가 무색한 채 임광그룹의 자회사로 탈바꿈했다.(94년 10월호)

89년 청주 최대 쇼핑몰이었던 청주 원프라자(현 청주백화점)가 부도직후 진로유통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폭력배가 개입해 물의를 빚었다. 당시 진로유통 부사장으로 매수 책임자였던 가갑손 대표는 한화유통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지난 96년 청주백화점 부도로 화의기업이 되자 다시금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당시 원프라자 소유자였던 성백준씨(71)는 사업경험이 없는 지역 재력가의 아들로 채권단과 조폭들의 압력에 못이겨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당시 검찰은 성회장을 감금폭행하고 상거래 채권단을 갈취한 조직폭력배 12명을 구속했으나 진로유통의 사주의혹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다.(94년 9월호)

광주 신압군의 양심고백,
북파공작원 실미도 특수부대의 실체

육군 20사단 60연대 소속으로 광주 진압군으로 참가한 이성우씨(46·청주 분평동)가 본보에 ‘80년 5월 광주의 그날’을 증언했다. 이씨는 광주 파견직전 성남비행장에서 시신 운구 장면을 목격했다는 새로운 주장을 제기했으나 확인되진 않았다. 취재결과 이씨는 광주 진압당시 자신의 야간순찰 작전지역 안에서 한 꼬마가 총상으로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심적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이씨는 제대후 대학에 복학했으나 적응하지 못해 고향 청주로 내려왔고 알콜중독증으로 지금까지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충청리뷰> 보도이후 서울방송에서 이씨를 취재했고 <월간조선>은 96년 3월호에 이씨를 정신이상자로 몰아세우는 반박기사를 게재했다. 이에대해 <충청리뷰>는 광주의 진실에 등돌린 보수언론의 태도에 대해 재반박 기사를 다루기도 했다. (95년 10월)

68년 인천항과 16㎞ 떨어진 무인도 실미도에는 684부대로 불리는 민간인 북파공작원들이 지옥훈련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김신조 무장간첩단의 청와대 침투시도에 대응한 보복공격을 위해 안기부가 급조한 특수부대였다. 주석궁 폭파임무를 띠고 3년간 혹독한 훈련을 받았으나 남북 해빙무드가 싹트면서 ‘버려진 부대’로 남게됐다. 열악한 처우와 통제된 생활에 고통받던 부대원 23명은 71년 8월 실미도 기간병 20명을 사살하고 무장탈영해 인천을 거쳐 수도 서울로 향했다. 군경의 저지에 가로막혀 19명이 탈취한 버스안에서 자폭했고 생존자 4명은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됐다. 이때 실미도에서 684 특수부대원을 교육시킨 교육대장 김방일씨(청주 거주)가 본보 취재진에 실미도의 진실을 증언했다. 김씨는 오는 10월 소설 실미도를 발간할 예정이며 현재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실미도 영화를 촬영중이다.(99년 12월)-사진은 2002 3월 20일

청남대 개방과 공공기관 관사제도 폐지

제2의 청와대 불리는 청남대가 지난 84년 대청호변에 들어서면서 국민관광지 개발 꿈에 부풀었던 문의주민들은 족쇄를 차게됐다. 서울 여의도의 절반이 넘는 54만여평의 땅이 통제구역으로 묶여 끊임없는 민원을 야기했다.

대통령이 1년에 서너차례 이용하기 위해 매머드 국가시설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권위주의 정권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충청리뷰>는 창간직후부터 청남대 개방을 요구하는 기획기사를 연속적으로 보도했고 9년만인 올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충북도에 청남대 관리권을 이양하게 됐다.
일제 잔재인 지방 관사문화에 대해 직접 메스를 들었다. ‘도심속의 고도’로 표현되는 기관장 관사는 대저택이지만 부부 또는 본인 홀로 거주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충북지사 관사는 2850평, 청주지검장 1276평, 청주법원장 472평, 국정원지부장 318평 부지에 각각 건립됐다. 관사는 전근대적 행정 편의주의의 산물인데다 시설 관리에 따른 적지않은 부담이 예산낭비 사례로 지적됐다.
<충청리뷰>는 94년 5월 첫 보도에 이어 지속적으로 관사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다.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국가기관의 지방관사 정리작업에 착수했고 청주법원장·지검장 관사가 매각됐다.
또한 민선시대 이후 자치단체장의 자택 거주 의식이 확산돼 청주·충주·제천시장과 청원·괴산·영동군수가 관사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제4부의 권력, 언론비평의 문을 열다

민주화 시대 이후 새로운 권력기관으로 등장한 언론의 자정기능 회복을 위해 언론비평 고정란을 신설했다. 지역 언론계의 따가운 질시와 압력도 있었지만 독립신문의 책임감으로 힘겹게 미디어비평의 장을 지켜왔다.
94년 5월 도심 고도제한의 주범인 청주 사직동 옛 KBS 사옥 이전을 촉구하는 기사를 시작으로 95년 9월 충청일보의 안기부 출신 사장 취임 저지투쟁을 심도있게 보도했다.

96년 7월 옥천군의 기자실 폐쇄조치에 따른 관-언전쟁 속에서 객관적 사실보도와 기자실 운영실태에 대해 점검했다.
이밖에 ‘관언유착’의 구조적 문제점과 언론의 행정기관 예산 의존실태를 집중취재했다.

또한 지방신문사의 열악한 재무구조와 사주의 공익적 언론관 결여를 꼬집기도 했다.
아울러 지역언론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 필요성과 독립적 편집·편성권 확보방안을 제시했다.

지역언론 육성법 제정을 통해 건강한 지역매체의 존립기반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지난 2000년에는 ㄷ일보의 총선보도와 관련 정치적 편파성과 여론조사 신뢰도에 대한 의혹기사를 보도하자 민형사 소송을 제기해 도내 처음으로 언론사가 언론사를 상대로한 고소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중인던 ㄷ일보 대표가 사회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아 고위공직자들과 아프리카 여행을 떠난 사실을 단독보도하기도 했다.

공직비리에 대한 추적보도, 교육감·군수비리 의혹 제기

김영세 전 교육감은 재선이후 금품수수와 관련한 소문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교육계의 유명인사는 칼럼을 통해 ‘장천감오’(교장 승진 천만원, 교감 승진 오백만원)라는 비유를 동원하기도 했다. 충청리뷰는 2000년 10월 김 전 교육감이 전 시설계장의 뇌물수수 사실을 비호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본격적인 밀착취재에 들어갔다. 이어 85년 모여고 교장 재직당시 청주시의 대표적인 사창가인 북문로 2가 중앙시장 골목의 여인숙을 매입해 임대해온 사실을 보도했다.

이밖에 예산절감을 내세운 학교교구 단가입찰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연속기사가 실렸다. 지역 시민단체에서 교육감 퇴진운동을 벌이자 청주지검이 수사에 착수했고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 전 교육감은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현직을 고수하다 결국 2002년 3월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사퇴했다.

변종석 전 청원군수는 민자유치로 시작된 초정스파텔 건립사업에서 비리의혹이 싹텄다. 97년 3월 충청리뷰는 ‘초정약수타운사업 물이 샌다’는 기사를 통해 업체 선정을 부당성을 제기했다. 결국 사업주는 건설공사 과정에서 부도났고 가까스로 마무리 공사를 강행했으나 회원권을 분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분양대금을 챙긴직후 사업자는 또다시 부도를 선언했고 초정스파텔 운영도 파행을 걷게 된다.

변 전 군수는 아들이 스파텔 공사과정에서 불법 면허대여로 하도급 공사를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청원군의 회원권 분양도 사기분양으로 판명나 일부 반환소송에 휘말렸고 공사비 청구소송으로 군 재정에 막대한 타격을 입게됐다. 변군수는 지난 2001년 대법원 상고심이 기각되면서 징역 3년이 확정돼 청주교도소에 수감중이다.

충북 달라져야 한다
지역 의제 설정 기능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지역이 안고있는 후진적 사회의식을 개선하고자 의제설정을 위한 기획보도에 치중했다.

96년 1월 학교동문이 ‘출세문의 암구호’로 통하는 철저한 ‘학맥증후군’에 대해 진단했다. 조직내에 특정고교 동문회가 움직이고 출신지역 향우회까지 판치는 ‘끼리끼리’ 문화는 선량한 다수에게 ‘줄서기’를 강요하고 자기발전의 발목을 잡는 사회병이다.

또한 사회적 업적보다는 관직과 문벌을 중시하는 충북의 양반문화에 대해서도 진단했다. 체면과 형식에 갇힌 충북인의 수동적 기질이 양반문화의 그릇된 ‘집단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제천 의병정신과 보은 동학정신 등 진취적인 기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2000년 5월에는 ‘바닥난 중앙의 충북인맥’ 특집기사를 통해 인재육성에 소홀한 지역풍토를 꼬집었다.
전국적으로 투서와 고소가 많은 지역으로 알려졌고 ‘클만하면 싹 자르는 기질’도 지적됐다. 행정부에서는 고시출신 지역인재풀이 부족해 중앙부처에서 사람을 키우기가 쉽지않고 그나마 고위직은 한직부서에 머물러있는 실정이다. 지역발전의 기반이 될 인재육성과 인맥확보를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지역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시선

지역의 마이너리티 그룹과 소외된 이웃들의 고통와 애환을 보듬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95년 5월 ‘뛰는 경제 기는 복지’ 특집기획을 통해 자치단체 예산 가운데 복지예산의 편성실태에 대해 분석했다. 97년 10월에는 민선시대 이후 ‘찬밥신세’가 된 복지예산의 허와 실을 꼬집었다. 청주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수동 판자촌과 나환자 집단거주지역으로 알려진 청원 가덕 충광농원을 기자가 방문해 도내 처음으로 르포기사를 작성했다.

향토작가 김하돈씨의 ‘충북 오지기행’을 연속시리즈로 다뤄 지역의 옛 것을 간직한채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조명했다.
아울러 여성권익 보호운동에 진보적인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노력했다. 95년 10월 “‘지구의 반’은 얼마인갚 특집기획을 통해 학교교육·취업·가정내에서 벌어지는 광범위한 성차별 의식에 대해 집중보도했다. 또한 가정폭력과 여성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기획물로부터 최근 호주제 철폐문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사회적 발언권이 약한 청소년들의 고민과 생각을 전달하는데 주력했다. ‘중앙공원 10대들의 반란’기사를 통해 한밤중 도심공원의 치외법권적 청소년 무풍지대를 밀착취재했다.
아울러 자모원 등 보호시설 취재를 통해 미혼모의 실상과 예방대안에 대해 지면을 편성했다.

양길승 전 청와대 부속실장 향응접대 사건 전국최초 보도

양길승 전 실장의 청주방문 사실을 최초 보도하면서 ‘양길승 커넥션’의 단초를 제공했다. 부도덕한 청와대 공직자와 지역 토착비리 인물의 청탁, 법조 브로커의 알선고리가 3각축을 이룬 이번 사건은 권력주변을 맴도는 지역 토호들의 치부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여기에 검찰내부의 수사외압 의혹까지 덧씌워져 지방검찰의 현주소를 실감케했다. <충청리뷰>는 몰카 배후 집중된 세간의 관심을 지역 토착세력의 야합과 검찰의 비호의혹으로 돌리는데 주력했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방검찰의 개혁과제’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지방권력을 쫓는 고위 공직자, 중견 기업인 등 토호세력과 법원·검찰인맥을 통해 법조브로커로 영향력을 과시하는 비리인물, 해바라기 지방 정치인들이 지역의 ‘이너서클’로 결합하는 행태에 대해 깊은 우려감을 나타냈다.

이번 사건으로 구속됐던 박모씨(45·여)와 김모씨(52·민주당도지부 부지부장)는 이미 충청리뷰 기사와 관련, 한차례씩 구속기소된 공통의(?) 전력이 있다. 검찰내부의 수사압력을 폭로했던 김도훈 전 검사는 몰카 기획 및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지만 정작 수사압력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이번 사건은 정치권 사건청탁에 따른 금품수수 및 수사외압 의혹이라는 사건 본질이 미숙한 소장검사의 파렴치한 범죄행위 규명으로 변질되고 있다.

검찰 불공정 수사 고발 보도와 청주지검의 탄압수사

충청리뷰는 지난해 10월 청주지검의 광고주 무더기 소환조사 과정에서 사상 초유의 ‘백지광고’ 사태를 맞게됐다. 윤석위 전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의 비리혐의로 일요일 한밤중에 전격 연행돼 구속됐다. 검찰수사의 배경은 청주지검의 구속수사 남발과 지역토호들과 유착의혹을 제기한 기사 때문이었다. 충청리뷰 직원들은 40여일간의 장기농성에 돌입했고 지역의 40개 시민사회단체는 대책위원회를 구성, 검찰의 부당한 언론탄압을 고발했다.

성역없는 보도와 편집권 독립을 표방한 충청리뷰가 지방 검찰과 파열음이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건일 수도 있다. 창간직후인 94년 7월 청주 동부우회도로 담합입찰을 폭로한 지역 ㅈ건설에 대해 조세포탈 혐의를 씌운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제기한 바 있다. 또한 96년 11월 신경식의원의 선거법위반 수사가 무혐의 처리된 것에 대해 문제제기한 직후 주주회사에 세무조사가 닥치기도 했다.

98년 5월에는 충청리뷰 도민주 공모에 참여한 대학교구 납품업자를 소환해 5일간 강압수사를 벌여 스스로 목숨을 매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2000년 11월에는 철도청 담합입찰을 수사하면서 의혹기사를 첫 보도한 본보 기자를 오히려 공갈혐의로 구속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광고주 탄압수사를 자행한 검찰은 언론과 지역여론의 역풍속에 아무런 수사결과도 내놓지 못했다. 충청리뷰 광고주 소환조사는 올해 대전고검 국정감사에서 정식으로 문제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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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형기 2003-09-22 12:50:04 , IP:*****
흔히 언론이 정경유착이라고 말들을 해 왔었다. 그래도 언론이 있었기에 우리네 민초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충청리뷰는 이 지역의 " 살아 있는 지역신문 "으로 나름대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동안 10년의 고초에 대해 박수와 함께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하면서 몇자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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