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우정이라면…김덕기 충북농협본부장-청와대 경호처장 출신 강두승 한강로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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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정이라면…김덕기 충북농협본부장-청와대 경호처장 출신 강두승 한강로 지점장
  • 충청리뷰
  • 승인 2002.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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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본부장 부임하자 "부담 안주겠다" 서울근무 자청
김덕기 신임 농협중앙회 충북본부장과 강두승 서울 한강로지점장(전 충북 부본부장·53) 간에 평생에 가깝게 유지돼 온 우정의 '교유(交遊)'가 농협 안팎에서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둘간의 각별한 우정은 최근 강지점장이 서울 근무를 위해 떠난 뒤 부쩍 회자되고 있는데, 강 지점장이 친구인 김덕기 본부장의 부임 직후 서울 근무를 자청했을 때만 해도 둘 사이의 특수함을 모르는 주위에선 "동창이 상사로 온다니까 껄끄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식의 추측성 입방아가 난무했다.
그러나 강 지점장의 인사자청에는 둘도 없는 친구인 김 본부장의 운신 폭을 최대한 보장해 주려는 적극적인 우정의 배려가 깔려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작은 감흥을 던지고 있다. 또 부임하자마자 친구를 떠나 보내야 했던 김 본부장 역시 친구가 '좋은 자리'로 갈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 쏟는 등 진한 우애를 과시,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둘이 쌓은 우정의 나이테는 40을 훨씬 넘는다. 김 본부장과 강 지점장의 고향은 다같이 청원군 미원면. 김 본부장의 집은 미원리이고 강 지점장은 금관이다. 이토록 어렸을 때부터 우정을 쌓아가던 두 사람은 '촌놈'들로선 꿈같은 대상이던 명문 청주고(41회)에 나란히 합격, 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더니 대학에도 똑같이, 그것도 같은 학과에 진학하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우정을 쌓게 된다.
"1969년 충북대 농학과에 나란히 들어갔는데 공교롭게도 친구(강두승)와 저의 학번이 1번과 2번이었습니다. 그런데다 4년 내내 둘이서 장학금을 번갈아 탈 정도로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김 본부장은 "하지만 졸업후 친구는 ROTC로 군문에 입문한 뒤 직업군인으로 변신했고 나는 농협중앙회에 입사하면서 한동안 서로 다른 길을 걷게됐다"고 말했다.
이렇듯 서로 다른 항로를 나아가던 두 사람은 1991년 청와대 경호실 경호계획과장과 농협중앙회 본부 총무팀장으로서 전혀 예상치 못한 시공간상의 '접점'에서 새삼 우정을 확인하게 된다.
"당시 제1회 농업인 대회를 농협주관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총무팀장인 제가 행사준비를 총괄할 때였습니다. 1회 대회인 만큼 대통령이 참석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말이 그렇지 이 계획을 어디에서부터 실행에 옮길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죠." 김팀장은 순간 친구를 떠올렸고 둘이 만난 자리에서 허물없이 고충을 털어놓았다. '대통령이 참석하면 행사가 대성황을 이룰 것 같다'는 간절한 희망이 전달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런 얼마 뒤 "대통령께서 참석하기로 일정이 확정됐다"는 희소식이 친구로부터 날아왔다.
친구가 주관하는 행사에 '넘버 원'을 동원(?), 한껏 빛을 내는데 당시 강 과장이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이다. 그때 만해도 대통령의 행차일정은 비서실보다 경호실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던 시절이었다.
어쨌거나 친구에게 마음의 큰 빚을 지게 된 김 본부장은 늘상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자 청와대 경호실에 구조조정의 찬바람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권위주의 정권시절 비대해진 경호조직을 문민대통령임을 자랑스레 내세우던 YS가 내버려두지 않은 것이다. 그때 이미 차관보급인 경호실 처장으로 승진해 있었던 강 지점장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진로를 결정해야 할 지 고민이 컸습니다. 그때 친구가 종종 위로주(酒)도 사주곤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불쑥 저보고 농협중앙회로 오라는 거예요."
강 지점장은 "친구는 그때 농협본부 총무부의 부부장으로 2급이었는데 저보고 1급 부장으로 오라며 적극 권유했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청와대 경호처장이면 농협중앙회 같은 데에는 최소한 상무급으로 옮기는 게 직급상 어울리는 것이었지만 저는 친구보고 1급으로 오라고 했죠. 웬만한 사이였으면 오해사기 쉬운 권유였겠지만 그는 선선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강 지점장은 "주위의 반대가 심했지만 나 자신은 친구가 왜 그런 제의를 했는지 진심을 알았기 때문에 전혀 갈등을 느끼지 않았다"며 "그때 순간의 명예를 생각해 임기제 임원자리인 상무로 들어왔으면 지금쯤은 벌써 농협조직에 남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얼마전 서울근무를 자청한 친구에게 중앙회 본부의 부장급 자리-지역본부장을 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이다-로 갈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자리가 나지 않자 1급 부장급 지점 중 예수금 규모가 2500억이 넘는 노른자위 '한강로' 지점에 부임할 수 있도록 본부내 자신의 모든 인적 네크워크를 총동원했다.
/임철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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