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마을 이장

“공부할 자신이 없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입니까? 저희는 쓸모없는 2차 방정식 값을 구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공부 못하는 저 같은 사람들은 모두 죽어야 합니까? 저희들은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새가 아닙니다. 이젠 하늘 높이 날고 싶습니다.”

1989년에 자살한 어느 중학생의 유서다. 바로 그해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이 제목은 이미 1986년에 자살한 어느 여중생의 유언이었다. 더 이상 시험으로, 점수로, 등수로, 아이들의 인생을 재단하지 말라는 간절한 호소들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시험 압박과 점수 스트레스로 삶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줄을 이었다. 여전히 ‘공부를 잘 해야 행복해진다.’는 착각이 우리 모두를 옥죈다.

게다가 2008년 10월부터는 ‘성취도 평가’라는 일제고사가 일제히 부활했다. 2009년에도 무려 서너 차례 예정되어 있다. 3월 말에 벌써 하나의 시험이 기다린다. 지난 3월 11일에도 또 한 학생이 평가 시험 도중에 집으로 가서 자살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시험의 공포 앞에서 제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마침내 귀한 목숨까지 버려야 하는가?

해마다 10대 청소년들 200명 이상이 자살하는 나라, 해마다 초중고교 학생 약 5만 명이 더 이상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학교를 나오는 나라, 그렇게 아이들이 더 이상 못 참겠다고 목숨까지 버리며 저항을 하는데도 어른들은 눈도 깜짝 않는 나라, 이 나라를 과연 사랑하고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는가?

시험이란, 만약 그것이 꼭 필요하다면, 학생이 스스로 얼마나 성장하고 성숙하고 있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를 해야 하고, 자기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정도여야 한다. 남과 비교하기 위한 것은 시험의 본래 취지가 아니다. 그래서 시험 결과도 공개할 일이 아니라 학생, 교사, 학부모 등 3자만 알면 된다.

게다가 정말 필요한 시험이란 다른 사람들과 협동해서 얼마나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고민하는 것이다. 남보다 더 많이 외웠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교육 당국이나 부모들은 여전히 ‘남보다 시험을 잘 쳐야 행복해진다.’는 도식에 갇혀 있다. 또 ‘시험 점수가 좋아야 교육의 국가 경쟁력이 살아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국제학력비교평가(PISA)에서 한국은 비교적 최우수 그룹에 든다. 그러나 과연 이 시험 점수가 좋다고 한국 교육의 수준이나 질이 높다고 할 수 있는가? 왜 초중고 아이들은 국제 시험에서 좋은 점수가 나오는데 왜 대학, 대학원에서는 그만큼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과연 한국 사람들은 학교 졸업 이후에 꾸준히 책을 읽고 학습을 하며 온갖 사회적 의제에 대해 공공선 증대를 위한 토론에 참여하는가? 국제학력비교평가에서 나온 점수만큼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사는가?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그 까닭은 이렇다. 우선, 학교 공부라는 것이 아이들 내면에 초점을 맞추어 과연 내 꿈은 무엇인지, 내 소질은 무엇인지, 내가 진정 배우고 싶은 건 무언지를 물어보는 게 아니란 점이다. 기계는 표준화하고 획일화해도 좋지만, 교육은 개성화하고 다양화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거꾸로다.

게다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을 힘껏 실현할 수 있는 공간도 없고 대접도 고르지 않다. 만약 어느 전공,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에 무관하게 나름의 색깔과 실력으로 재주를 뿜어내는 경우 사회적으로 고른 대접을 해준다면 아이들은 별 다른 스트레스 없이, 또는 하루에도 몇 번 자살 충동을 느끼지 않고도 열심히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몰입해서 배울 것이다.

요컨대, 미시적으로는 어른들의 못다 이룬 꿈에 대한 미련이나 다른 사람들 눈치 보기에 정신 팔지 말고 아이들 내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거시적으로는 아이들이 무슨 공부를 하고 나오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한, 사회적으로 비슷한 대접을 하는 그런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살고 어른도 제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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