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50~100만원 갹출, 자체 회비로 사용
교육감 선거 직선제로 전환, 활동 위축돼

[차별 가르치는 학교] 학교운영위원회 활동을 9년 동안 해온 A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의욕을 갖고 시작했고, 오랫동안 활동을 해왔지만 기대만큼 학교현장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 결국 ‘들러리’혹은 ‘교장의 이중대’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고백이다.

현재 학교 내 학부모 조직으로는 어머니회, 육성회, 학교운영위원회(이하 학운위)가 활동 중이다. 육성회는 과거 아버지회로 학교마다 열리는 학교도 있고, 그렇지 않는 곳도 있다. 어머니회는 임의단체지만 여전히 건재하고 있고, 학운위는 법적인 단체로 1995년에 시범 운영되다가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처음 학운위가 만들어진 데는 전교조의 역할이 컸다. 학교 운영에 있어 학부모의 자율적인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적극적으로 찬성했기 때문이다.

성방환 전교조 충북지부 전 지부장은 “학운위 활동이 2000년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유명무실한 존재가 돼버렸다.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활동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고, 참여의 폭도 너무 제한적이라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학교마다 활동에 큰 차이가 있지만, 대개 교장과 교원의 의견에 동의만 구하는 모임으로 전락했다”고 설명했다.

▲ '치맛바람'부는 3월의 학교는 각종 학부모모임을 조직하느라 정신이 없다. 학부모 조직이 원칙을 잃고 친목도모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진=육성준 기자
3월안에 모집 끝내야
3월 초 학교는 서둘러 새로운 어머니회원, 학운위원 모집을 끝내야 한다. 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보내 회원을 1차적으로 모집하지만 예전만큼 참여도가 높지 않다. 실업계고교일수록 사정은 더 나쁘다. 청주여상의 J교사는 “가정통신문을 돌렸는데 한명도 신청하지 않아 난감했다. 다들 어려워진 경제사정 때문에 부담을 느낄 뿐 아니라, 아무래도 인문계가 아니니 관심이 적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학운위원을 뽑는 게 원칙이지만 대부분 학교장 및 교원들이 친분 있는 사람들을 선정하기 일쑤다.

학운위는 교사위원, 학부모위원, 지역위원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교장은 당연직으로 들어간다. 지역위원의 경우 교사위원과 학부모위원이 추천해서 구성되는 데 역시 친분이 작용한다. 지역위원은 원래 지역사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참여해야 한다.

9년차 학운위원 A씨는 “예전에는 학운위 활동이 이렇지 않았다. 학운위 연합회는 몇 년 전 방과후 수업의 필요성 논란이 일었을 때 기자회견을 열어 의견을 전달했다. 교육현안에 있어서도 성명서를 종종 발표했다. 학운위 활동이 시들해진 데는 교육감 선거가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전환된 데도 이유가 크다. 학운위원들이 음성적으로 선거운동을 했고 교육감 후보들도 이들의 표심을 잡기위해 일종의 라인이 형성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관계들이 끊기면서 학운위 활동도 자연스럽게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교통비로 유전자 검사도
예전에는 지역 정치인들이 학운위원으로 대거 활동하면서 얼굴을 알리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학교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학운위 활동에 나선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는 B씨는 “업자들이 학운위원이 되면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 급식납품업체 및 학교 기자재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학운위원으로 들어온다. 이들이 학교와 거래가 성사되면 그 다음에는 금액의 일부를 학교발전기금으로 내놓는 수순을 밟는다. 때로는 교장들이 나서 학교발전기금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학운위 활동 가운데 눈에 띄는 사례도 있다. 학운위원들은 보통 한번 회의를 가질 때마다 교통비조로 3만원을 받는다. 회의는 일 년에 5~6차례 열린다. 대성고의 경우 3만원 가운데 절반을 급식업체의 ‘DNA유전자’ 검사비용으로 지출한다. 한 달에 한번 검사하는 데 비용이 1만 5000원이다. 정우철 학운위원장은 “급식문제는 곧 아이들의 건강권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학운위원들이 학교에 제안을 했고 흔쾌히 통과됐다”며 “학교 운영위원들이 개인의 목적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학운위원들은 학교에 연간 1인당 50~100만원을 내는 보이지 않는 룰이 여전히 있다. 취재 결과 이러한 돈은 회의비 및 체육대회 식사비용으로 지출하지만 따로 영수증을 남기지는 않는다. 자체 비용으로 쓰고, 남으면 학교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

운영위원인 Y씨는 “웬만한 학교는 다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 내 자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학부모들의 순수한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학교의 형식적인 운영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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