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없다. 꽃만 갖다놓고 행사하는 식이다.” 행사를 앞두고 작가들과 간담회 한 번 열지 않고 관주도로 일사천리 진행해가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대해 지역 작가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 청주시에서 몇 십억씩 들인 미술행사를 하면서 지역작가들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뿌리없는 행사라고 비판하는 모 작가는 한마디로 “우리와는 상관없는 행사”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 8일 충북도예가협회 창립전이 개막되던 날, 일부 공예가들이 나기정 청주시장에게 따져 물은 것도 이같은 내용이었다. 이들은 나시장과 비공식적인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지역작가들을 배제하고 일을 진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 모씨는 “지역작가들을 왜 소외시키느냐고 하자 나시장이 국제행사라 배려할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시장님은 청주시장이 아니라 서울시장 같다’는 야유성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며 “1시간 가량 이 문제를 가지고 시장과 작가들이 토론을 벌였다”고 전했다.









지역작가 작품 찾기 힘든 전시관
실제 지역에 뿌리를 두고 활동하는 작가들이 공예비엔날레를 보는 시각은 상당히 냉소적이다. 국제초대작가관이나 국제공예공모관, 전통공예관 등 주요 전시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낯익은 지역작가들의 이름은 발견할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 잔치니까 우리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식의 지역이기주의 차원이 아니고, 이 행사를 이끌어가는 최소한의 단위인 지역미술인들로부터 호응을 얻어내는 것이 중요함에도 공예비엔날레는 이런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이런 사정은 지난 99년 행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 모 대학 교수는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됐다. 체계가 없고 전문가들의 참여가 극히 일부분인 데다가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행사를 처음 제기한 사람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들었다”며 “어떤 행사든 지역을 배제하고 잘 될 수는 없다. 지역작가들이 이 행사를 외면한다면 큰 문제”라고 말했다.
또 작가 모씨는 “엄밀히 말하면 공예비엔날레는 청주 축제가 아니다. 전시관의 판을 짠 사람도 서울에서 왔고 사이사이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도 외부인이 많다. 그럼 청주시 말대로 국제행사라서 그런가. 아마 이것을 국제행사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고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더욱이 이런 점은 청주시의 주장과도 배치되는 부분이다. 청주시는 ‘왜 공예비엔날레를 청주에서 해야 하느냐’ 고 공격을 받을 때마다 금속과 도자기를 비롯한 공예를 특화하여 경제적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렇게 되면 결국 청주시는 명분만 지역에서 찾고 내용은 외부에서 구한 셈이다. 광주비엔날레가 광주시민들의 자부심속에서 열리고 두터운 지역작가군이 밑받침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공예비엔날레의 뿌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백화점식 전시라는 비판이다. 1회 때 역시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도자기·섬유·유리·금속·목공예 등 그 많은 공예를 한꺼번에 보여주겠다는 식으로 판을 짜다보니 연관성도 없고 보고나도 무엇을 보고 나왔는지 정리가 안 된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
충북대 미술과 이완호 교수는 “주제가 넓어 행사 자체가 밀도가 없다. 이천의 도자기축제가 성공한 이유는 이천이라는 지역적 특성도 특성이지만 도자기라는 주제로 요약했기 때문이다. 공예라는 것은 생활주변에 있는 물질적인 모든 것들이 포함되는 매우 포괄적인 것인데, 이것을 한번에 보여준다는 것이 황당하다. 더욱이 우리 지역에서 공예의 모든 것을 끄집어내 전시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라고 전제하고 “도자기, 가죽, 유리, 섬유공예 등을 그 때 그 때 한가지씩 테마로 잡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조직위 관계자는 올해 전시가 ‘자연의 숨결’이라는 대주제를 주고 국제초대작가전에 본성의 표현, 물성의 화음, 색의 공간, 모방의 거울이라는 네 가지 소주제를 주는 식으로 줄거리가 있는 전시로 기획했다는 설명이나 일반인들이 이것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산업공예관 전시 상품중에는 백화점이나 상가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이 많고, 매주 일요일 열리는 전통혼례 퍼레이드는 너무 식상하다고 관람객들은 불만을 터뜨린다. 전통혼례는 지난 99년 비엔날레 때도 했던 프로그램이고, 국내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것 또한 이 것이다. 야외공연장의 째즈댄스, 강강술래, 택견 역시 색다른 맛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행사가 끝나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이런 것을 빗대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행사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남는 것은 정치, 즉 자치단체장의 치적뿐 아니냐”는 말이 벌써부터 오가고 있다.
이번 공예비엔날레는 첫 번째보다 규모나 예산면에서 대폭 축소됐다. 지난 99년에는 32일간 55억원의 예산을 들인 행사를 기획했으나 올해는 10월 5일∼21일까지 17일간 35억4000만원을 예상하고 있다. 첫 번째 행사가 끝난 뒤, 대규모 이벤트성 축제를 너무 많이 벌인다는 지역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나시장은 행사를 줄여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조직위에서는 규모는 작아졌지만 내용면에서는 볼 게 더 많아졌다는 것이 관람객들의 여론이라며 홍보하고 있으나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지는 미지수다. 다만 전통매듭, 전통연, 자수, 죽세공예, 나전칠기 등 대폭 늘어난 공예체험장과 매주 일요일 청주 내곡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펼치는 ‘봉숭아 꽃물 들이기’는 재미있는 추억을 제공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 홍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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