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의 편집인

지금 이 사회는 온통 거대한 음모론에 빠져있는 느낌이다. 소위 ‘양길승-이원호 커넥션’을 기축으로 불거진 최근 사태에서 우리는 진실을 확인키 어려운 온갖 음모론에 파묻혀 있다. 확인의 어려움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음모론의 특성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음모론 중 상당수가 현실적 개연성을 배척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검찰에 의해 몰카 지휘 등의 혐의로 구속된 김도훈 전 검사가 ‘검찰 내 이원호씨 비호세력이 있다’고 폭로한 내용은 대검의 감찰결과에 의해 부정됐지만 사회는 여전히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 의혹은 곧바로 “검찰이 조직보호에 급급, 내부감찰을 부실하게 한 것 아니냐”, “이원호씨가 거액의 대선자금을 민주당에 지원했다는 의혹이나 양길승씨가 이씨로부터 수사무마청탁을 받고 수사기관에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 등에 대해 검찰이 애초부터 수사초점을 맞추지 않고 보름이상 곁가지 문제인 몰카 부분에만 치중했던 것은 다른 고려사항 때문 아니었느냐”는 음모론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음모론의 배경에는 “검찰 주장처럼 김 전 검사에게 여러 문제가 있다손 쳐도 그가 제기한 내용조차 완전히 날조된 허위일까”하는, 이 사회의 일반적 정서가 깔려 있다. 아울러 “검찰이 김 전 검사를 도마뱀꼬리 자르기 식으로 서둘러 처리, 조직에 미칠 파장을 차단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이 음모론은 변호인단이 김 전 검사의 수사메모 일부를 공개함으로써 더욱 ‘휘발’하는 양상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주목되는 것은 작금의 음모론들은 기본적으로 거대 검찰에 대한 불신을 토양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음모론은 음모론의 대상주체가 막강하지 않고는 사회적 생명력을 얻지 못한다. 음모론은 항거불능의 권력이 힘없는 개인(또는 집단)을 상대로 모의는 물론 진실조작까지 한다는 ‘가정’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검찰이 얼마나 무소불위의 권능을 갖고 있는지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다.

최고 권력자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좋은 사례다. 대통령조차 검찰권력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을 가져왔는지 모르지만 “검찰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 발언-이 또한 발언배경이 음모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은 놀랍다. 어쨌거나 우리 사회는 검찰이 마음먹기에 따라 큰 죄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또는 자그마한 죄도 거꾸로 큰 죄처럼 만들 수 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회자되는 현실이 그 방증으로, 이는 이 사회가 검찰권력을 대상으로 만들어 낸 최절정판의 음모론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에 제기되는 이런 음모론에 대해 검찰이 “억울하다”거나 “근거가 뭐냐”고 윽박지르면서 마냥 회피만 할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났다는 데 있다. 검찰은 국민이 좀처럼 검찰을 믿지 못하는 이유를 성찰하지 않은 채 “자체감찰 결과를 믿으라”고 강변만 해서는 결코 우리 사회가 경계해야 할 음모론을 잠재울 수도, 나아가 국민의 검찰에 대한 신뢰도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국민은 정치권력에 예속된 검찰도, 그렇다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검찰도 원치 않는다. 국민은 이번 사건수사에서 검찰이 얼마나 엄정한 자세를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