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지난 주 충청리뷰에 지방대생 취업난에 관한 글이 실렸다. 구직자 10명 가운데 3명이 취업을 포기하고, 100대 기업의 지방대생 취업률은 4.8%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였다. 입학 당시에는 서울의 사립대보다는 지방의 국립대라는 장점을 생각하고 들어갔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성적이 3.5 이상이고, 토익이 700점이 넘는데도 소용없었다. 필터링이라는 것이 있다. 흔히 1차 서류접수에서 하는 거르기를 말한다. 면접도 가지 않고 먼저 자르기하는 것이다. 이 때 필터링의 대상자가 곧 지방대생이다. 이것은 분명한 법률위반이다. 그러나 그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어떤 주간지에서 익명을 전제로 조사한 결과 10의 7은 지방대생은 필터링에 걸린다. 다행히 아니라고 답한 기업도 있었으나, 그곳은 정시채용이 아닌 수시채용의 원칙을 지키고 있었다. 그 때 그 때 필요한 사람을 뽑다보니 우리가 염려하는 선별작업이 불필요해진 까닭이겠다.한국교육개발원에서 2002년 1백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실제 직무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의견은 16.1%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학력란을 폐지하라는 인권위원회의 권고는 여전히 무시당한다.

지인에게 전화를 건다. “내 학생이 거기 원서를 넣었데. 그런데 지방대 애들 걸러진다면서? 좀 올려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 걔는 올려줄게. 그런데 올라가서는 어떻게 될 지 몰라.” 생각 좀 해보자. 연줄로 해서 지방대 출신의 어느 친구 하나가 면접대상에 어떻게 한번 올라갔다고 해서, 우리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

교육인적자원부는 5년 동안 지방대육성사업에 1조5천억원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산자부, 정통부, 과기부의 예산까지 합하면 총 4조에서 5조에 달하는 적지 않은 예산이다. 게다가 정부는 올해에도 지방대에 600억원의 특별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게 돈으로만 해결 될까? 장학금이 많고, 연구비가 많고, 건물이 좋다고 해서 지방대로 학생이 오는가? 게다가, 4년 동안 혜택 받았다고 40년이란 세월을 불이익을 당하는 현실이 개선되겠는가?

이런 모든 문제의 핵심에 뿌리 깊은 학벌의식이 개입되어있다. 학벌은 대학서열화와 더불어 젊은이들을 오로지 암기력을 기준으로 1등에서 10만 등까지 줄을 세운다. 소숫점이 우선인지, 인간이 우선인지 모를 지경이다. 사람의 평가가 정확하지 않아 대학에서도 A, B, C, D, F가 고작인 현실에서 어쩌다 영 점 몇으로 인생이 갈림길에 서게 되고, 그것 때문에 고소고발이 횡행하는지 어이없다. 인간에 대한 평가가 20살도 되지 않은 단 한 번만의 평가로 좌지우지되는 이상한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다. 경쟁은 계속되어야 함에도 1등도 공부하지 않고, 10등도 공부하지 않는다. 1등은 영원히 1등이기에 노력하지 않고, 10등은 영원히 10등이기에 노력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의 출발점도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우선이 되고, 결혼에도 막중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학벌은 단순한 학력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계급의 성격을 띤다. 20년 전만 해도 가능했던 지방명문이 사라지고, 서울로 집중된 권력에 밀려 서울권 다음의 대학이 되었다. 서울의 부자동네인 강남은 이른바 명문대 진학률 1위 지역이 됐다. 돈 놓고 돈 먹기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방대학이 붕괴되었을 때 지방분권이 가능해질까? 충북에서만 자녀 교육비로 서울에 올라가는 돈이 7,000억원 이라고 한다. 전국으로 따지면, 5조에서 6조에 이른다. 이런 중앙집중적인 학벌권력을 타파하기 위해, 지방대 출신자를 위한 공직의 지역인재할당제, 즉 지역인재의 균등임용 등 여러 방안을 아무리 주장(의원입안: 98.2.14)해도 서울과 학원재벌에 밀려 소리 없이 묻혀버리고 만다. 인간성을 기르는 공교육은 죽고 이 틈새를 타고 점수만 올리는 사교육만 성행한다.

사실 지방대생들은 이런 구조를 분노해야 한다. 마치 개인의 잘못인양, 마치 능력의 차이인양, 호도하는 권력의 독과점 세력에 대해 맞서야 한다. 학벌차별은 성별, 외국인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성적소수자 등의 차별을 모두 포괄하는 차별이다.

서울 가는 버스에서 만난 제자는 원서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공사시험을 보든지, 아니면 수시모집에나 지원을 하는 편이 힘이 덜 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게 선생으로 할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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