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 CJB 청주방송 PD

이탈리아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성공한 CEO 출신의 정치인이다. 1960년대 초 밀라노 외곽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70년대에는 여러 개의 지역방송국을 사들여 MEDIA SET을 설립했고, 이후 이탈리아의 3대 민영방송을 소유한 언론재벌이 되었으며 프로축구단 ‘AC 밀란’까지 보유한 이탈리아 최대 재벌의 총수이다.

성공한 기업인이라는 신선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1994년에 정치무대에 뛰어든 그는 단 100여일만에 총리에 당선되는 놀라운 능력을 과시한다. 집권 7개월만에 실각, 2001년에 재집권, 2006년 AC 밀란 승부조작 스캔들과 비리문제에 얽혀 선거 패배, 2008년 3선 총리에 당선되었다.

총리에 당선된 베를루스코니는 공영방송 ‘RAI’에 대한 본격적인 ‘개혁’에 나선다. 우선 RAI 사장을 자신의 최측근 인물로 교체하고, RAI의 이사회 구성 관련법을 개정한 ‘가스파리법’으로 5명의 이사 중 3명의 이사를 친정부 인사로 채울 수 있게 합법화한다. 그를 비판하는 유명한 기자들과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미디어에서 축출된다.

각종 시사 고발 프로그램들이 폐지되고 선정적인 쇼프로 방송들로 대체된다. ‘속도전’으로 진행된 공영방송 장악은 재집권 2년여만에 완료되었다. 이후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법안들을 처리한다. 총리및 정부 주요 요인 3명만을 위한 ‘정부 주요 요인 면책특권 법안’과 범죄의 공소시효 기한을 절반으로 줄여버린 일 등이다.

이탈리아의 많은 사람들은 베를루스코니를 지지하는 이유로, 경제를 살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언급한다. 실제로 베를루스코니의 선거전략 역시, 자신이 사업가로 성공했으며 이탈리아의 경제도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성장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무능한 좌파정권’을 몰아내자는 구호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베를루스코니가 집권했던 기간에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은 0.6%로 0에 가까웠으며, 국가경쟁력 역시 급격하게 추락했다.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와 비슷하게 그 나라의 청년들은 1000유로 세대로 불리고 있고, 이러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의 성공이미지가 모두에게 가능한 것이라는 환상을 유포했다.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실질적 상황에 대한 성찰과 비판보다는 미디어가 유포하는 소비문화에 길들여져 이에 열광하면서 베를루스코니의 3선을 가능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 이탈리아의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이 좌절하고 있다. 이미 장악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을 바라보며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다. 한국적 현실, 이탈리아에 못지않게 아슬아슬하다. 자본에 방송영역을 개방해야 경쟁력이 생기고, 세계와 경쟁할 글로벌 미디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방송의 공공영역을 무너뜨리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간들은 인공두뇌를 가진 컴퓨터 AI에 의해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당한 채, 평생 1999년의 가상 현실을 살아간다.

인간의 기억 또한 그들에 의해 입력되고 삭제된다. 상식과 합리적 지성의 힘보다는 조작과 이미지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지구촌 현실, 과연 영화속 매트릭스와 얼마나 다를까 자신이 없다.

모피스와 그의 동료 해커들은 인류를 구원할 영웅을 찾기 위해 생명을 건 모험을 무릅쓰고 영웅 ‘네오’를 찾았다. 현실의 ‘네오’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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