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이기용 교육감께서는 심히 송구스럽다는 속죄의 표정으로 충북도민들 앞에서 자기비판을 했다.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 경건함과 비장함이 감도는 일종의 속죄예식 같았다. 김명희 충북전교조 정책실장이 분석한 것과 같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력이 신장된다는 긍정적인 자료를 놓고서 사과와 속죄를 한 것이다.

물론 사과와 자기비판을 하지 않으면 십자포화를 맞았을 것이므로 전광 같은 사과와 석화 같은 속죄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이 속죄예식에는 정교한 정치적 기획이 놓여 있다. 이 문맥에서 정치적이라는 것은 자기 주체를 행사하려면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을 차용한 것이므로, 오해가 없으실 것을 청한다. 그 정치적 논리의 순차(順次)는 이렇다.

1.충북의 학력이 낮은 것으로 판명이 났다. 2.학력이 낮은 것은 죄악이다. 3.학력제고의 총책임자로서 잘못이 있다. 4.잘못을 정중하게 사과한다. 5.사과를 바탕으로 분발을 약속한다. 6.향후 충북교육의 학력제고를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 7.교육감 이기용이 그 일을 해야 하는 적임자다. 전제가 없는 이 형식논리는 틀린 결론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학력이 낮은 것이 죄인가 아니다. 감성교육이나 인성교육을 잘못한 것은 죄가 되지만 학력이 낮은 것은 죄가 아니다.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을 시켜 보자면, 학력이 낮은 것을 사과하겠다는 뜻은 학력이 높았을 때 교만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책임이 이기용 교육감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구조적으로 볼 때 앞으로 누가 교육감이 되더라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더구나 이 사과는 향후 수단방법을 약간만 가리고서, 학력제고와 성적향상에 매진하겠다는 명령이자 선전포고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사과의식은 전재원 교육국장과 홍순규, 손영철 장학관을 포함한 산남사령부 교육관료 전체의 작전으로 보아야 한다.

이 선포에 따르자면 앞으로 교육장과 학교장은 성적전투의 부대장이 되어야 하고, 교사는 승리를 위한 투쟁의식을 강요받을 것이며, 학생들은 목숨 걸고 전투를 하는 전사(戰士)로 다른 학생을 패배시켜야 하고, 학부모 또한 사교육의 짐 때문에 자기 인생을 포기해야 한다. 이처럼 학력제고 성적향상의 전쟁터에 거도적으로 출정하자는 명령을 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사과를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성적이 어느 정도 올라갈 수 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서열수치화의 광기(狂氣) 속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누군가는 하위, 열등, 지진, 저능으로 낙인찍히는 상대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괴산의 성적이 올라가면 영동교육장이 질책을 받을 것이고, 단양이 올라가면 진천교육장이 쫓길 것이다.

그리고 충북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충남에 비난이 쏟아질 것이고 청주가 학력이 높으면 대전이 열등해지는 것이다. 결국, 이전투구 우승열패의 악순환의 마력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모든 학생의 전투화와 교사들의 전쟁은 그칠 날이 없고, 입시전쟁으로 인하여 도탄에 빠진 국민들의 한숨만 높아갈 것이다. 실제로, 다른 교육청에서는 성적조작과 같은 범죄도 서슴없이 저지른 것으로 판명되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명약관화(明若觀火)하지 않은가

이것을 조장한 안병만 장관은 성적공개를 통하여 일제고사, 연합고사, 평준화해제, 대학입학시험 자율화, 특목고 설립, 기여입학제 등 온갖 문제적인 교육정책을 실행하려는 신자유주의 작전을 펼쳤다. 이 호명(interpellation))에 응답하여 각 시도 교육감들이 다투어 자책과 고백을 하는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으니 놀랍기도 하거니와, 그중에서도 이기용 교육감의 자책감이 단연 돋보였다.

교육감의 사과는 충북인들에게 패배감을 안겨 주었고, 교육가족에게는 위기의식을 심어주었으며, 교사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얹어준 한편, 학생들에게는 투쟁의식을 강요했으며, 학부모들에게는 희생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충북교육 전체에 문제를 야기했다. 결론은 하나다. 이기용 교육감께서는 사과한 것에 대하여 사과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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