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 편집국장

충청도의 기질을 풍자하는 우스개 얘기 한 토막. 지방도를 달리다 길가에 과일을 내놓고 파는 충청도 아저씨를 만났다. 수박 한통을 사려는데 가격표시가 따로 없다. 그래서 ‘아저씨 이 수박 얼마예요?’ 라고 물었더니 그 아저씨 대꾸는 ‘알아서 줘유’였다.

이쯤되면 손님은 기대 가격의 하한선부터 부르기 마련, “5천원이면 되겠어요?” 하자 ‘....’ “그럼 6,000원이면 됩니까?” ‘....’ “7,000원에 주실래요?” 그러자 아저씨의 얼굴이 굳어지며 “냅둬유... 집에 돼지나 갖다 멕이쥬, 머.”

얘기는 여기서 끝이지만, 아마 그 거래도 십중팔구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충청도 아저씨는 내심 1만원 선의 희망가격을 생각했지만 결국 흥정다운 흥정도 못해보고 판이 깨진 셈이다. 여간해서 내심을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 기질을 두고 외지 출신 사람들은 ‘의뭉스럽다’고 깎아내린다. 마음 한켠엔 계산 속을 품고 겉으론 모르는 척, 아닌 척 딴전을 피운다는 것이다. 일면 부정할 수 없는 아픈 지적이다.

하지만 속내를 감추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것을 겸양지덕으로 여기는 것이 충청도의 양반정신이다. 특유의 체면의식 때문에 묵묵히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윗사람에게 깍듯하고 직장에서도 연공서열의 저항감이 덜한 곳이 충청도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겸손과 양보만한 미덕이 없다.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청주상공회의소 차기 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현 이태호 회장이 직무대행을 포함, 13년째 ‘최장수 회장’으로 봉직하고 있고 올해 4선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최장수 회장의 4선 연임을 우려하자 “물론, 능력 있는 다른 분이 회장을 하겠다고 하면 물러날 의사도 있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아직까지 이 회장 이외에 차기 청주상의회장 출마의사를 공언한 기업인은 없다.

하지만 주변에서 출마를 권유받은 인사들은 한결같이 대답한다. “회장님이 더 하시겠다는데…냅둬유, 알아서 잘 하시겠쥬” 언뜻 좋다는 얘긴지, 싫다는 얘긴지 경계가 모호하다. 아예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충청도의 ‘냅둬유’ 화법이 결국 이 회장의 4선 출마에 명분을 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좌판이 끝나면 충청도 ‘냅둬유’ 아저씨는 아까운 수박을 돼지우리에 내던지며 말 할 것이다. “이게 어떻게 키운 건데, 거저 먹을라고…안팔고 말지”

부디 이번 청주상의 회장 선거에 충청도 아저씨의 ‘희망 가격’에 맞는 적임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같은 도민의 기대를 앞장서 해결하는 역할이 도지사의 몫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충청리뷰>는 지난 2006년 6월 정우택 지사의 당선직후 지역과 지역민의 기대감에 대해 집중보도한 바 있다. 특히 50대 지사로서 고령의 원로들이 지역 사회 주류의 전면에 서 있는 현실을 개선해 줄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취임 2년반이 지나도록 이러한 기대에 부응한 실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충북도 산하기관·출연기관은 물론 주요 민간사회단체 가운데 도지사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 많다. 하지만 정 지사는 민선단체장의 부담감 때문인지, 지역은 물론 서울 충북협회의 파행사태도 수수방관했다. 오히려 이필우 충북협회장의 인재양성재단 장학금 출연제의에 이끌려 신년행사에 참가하려다 뒤늦게 번복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아랫사람의 간언(諫言)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힘있는 권력자의 직언(直言)은 절대적이다. 충청도 화법상 간언도 아닌 직언을 상소하기는 매우 어렵다. 도지사는 누가봐도 지역에서 가장 힘있는 권력자다. 그의 직언 한마디가 지역의 작은 물줄기를 바꾸고 결국 큰 흐름을 조정할 수 있다. 조정이 정치라면, 정우택 지사의 정치력에 다시한번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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