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洞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누년년첨녹파)
-비 갠 방축에 풀빛 짙은데 / 남포로 임 보내는 슬픈 노래여 /
대동강 물은 언제 다하리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지는걸-
고려 인종 때의 문신 정지상은 벼슬이 정언(正言), 사간(司諫)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고려 12시인중의 한 사람으로 꼽힐 만큼 출중했으나 묘청의 난에 연루돼 김부식에 의해 참살된 비극의 주인공입니다. 위 글은 어느 때 그가 지은 시 ‘송인(送人·임을 보내며)’입니다. ‘비 그친 긴 제방엔 초록빛 짙은데, 남포라 임 보내는 노래 슬픈 대동강은, 해마다 이별 눈물로 저리 그득 흘러라’라는 이 빼어난 시는 자고이래 이별의 아픔을 그대로 전해오고 있는 명문입니다.

조선 숙종 때 구운몽(九雲夢)을 쓴 김만중은 이 시를 조선의 양관삼첩(陽關三疊)이라며 당나라 왕유(王維)의 유명한시 ‘送元二使西安(송원이사서안)’에 견주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 영조 때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로 이름 높던 신위(申緯)는 이색(李穡)의 ‘부벽루’와 묶어 이렇게 적었습니다. ‘풍등(風)에 기대어 길이 읊는 이목은과 / 푸른 물결에 눈물짓는 정지상은 / 호방하고 우아함이 막상막하라 / 헌헌장부앞에 정숙한 아가씰 다’라고.

‘양길승몰카사건’에 연루된 김도훈검사가 구속되기 전 검찰통신망에 위의 시 ‘송인’을 올렸다고 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서른 일곱, 동안(童顔)의 앳띤 김검사가 어떤 심사로 이 시를 올렸는지, 나는 그 깊은 마음을 알지 못 합니다.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돼 안타까운 심경을 이 시로 대신한 것인지, 아니면 남의 시이지만 그 시를 통해 떠나가는 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짐작컨대 어느 한 순간 파멸이라는 천길 벼랑 앞에 서게 된 참담한 심경을 우회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 이 아닌가 생각이 들뿐입니다.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어제, 오늘의 일을 모르고 오늘, 내일의 일을 모르는 것이 세상사입니다. 옛 글에 천유불측풍우(天有不測風雨)하고 인유조석화복(人有朝夕禍福)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비와 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 화와 복이 번갈아 찾아온다’는 이 글은 인간의 운명은 예측하기 어렵고 행불행은 누구에게나 항상 있다는 것을 말하고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죄지은 사람을 감옥으로 보내던 사람이 오늘 죄인이 되어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운명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갖게 됩니다.

무엇이 앞길이 양양하던 젊은 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정의감인가, 명예인가, 아니라면 돈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인격의 결함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답이 무엇이든 김검사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조금만이라도 넓게, 그리고 따뜻하게 보는 삶을 살았더라면 오늘 같은 회한의 눈물은 흘리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겸허하게 살아야 합니다. 권력을 가졌든, 부를 가졌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든 몸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쥐꼬리만한 것을 갖고있다 하여 남의 눈에 피 눈물이 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일체유아(一切由我)요, 만사(萬事)는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김검사의 비극은 그 한 사람만의 일은 아닙니다. 누구이든 그의 파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옷깃을 여며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업보(業報)아닌 것이 없다고 불가(佛家)는 가르칩니다.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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