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 전 청주법원장, 격식파괴 1년 행보 화제
두꺼비신문 ‘어린이기자’ 14명과 마지막 인터뷰

대법원의 지난 2일 인사에 따라 수원지방법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재홍 전 청주지방법원장의 격식파괴 행보가 떠난 뒤에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 전 법원장은 지역(충주) 출신으로, 지난해 2월 취임 당시부터 “맑고 깨끗한 청주에 오니 유년 시절에 자랐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다. 구성원과 지역민이 행복한 것이 법원장의 의무”라며 지역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냈었다.

이 전 법원장은 지난해 7월 청사를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으로 이전한 뒤 8월에는 지역주민들을 초청해 기념공연을 가졌다. ‘진실의 눈으로, 공감의 여울로’라는 주제로 열린 주민초청공연은 청주와 대전의 법원 합창단이 직접 무대에 오르고, 복지관의 노인 등을 초청해 마련한 진솔한 자리였다. 이재홍 법원장은 또 지난해 10월 법원에서 ‘아름다운 가게’ 나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 전 법원장은 이밖에도 지난해 11월 베이징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인 장미란, 사재혁 선수를 초청해 직원들과 대화의 시간 및 사인회를 갖는 등 신성한(?) 법정을 유쾌한 대중행사의 공간으로 만들어 화제가 됐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장미란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 이 전 법원장이 내부전산망에 올린 글을 통해 장미란 선수의 승전소식을 축하하면서 각별한 개인적 친분에 대해 밝히자 ‘장 선수를 보고 싶다’는 구성원들의 요청이 쇄도해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

파격행보의 절정은 2008년 12월10일 창간준비 1호를 내고, 2009년 1월15일 창간호(격주간)를 발간한 산남동의 동네신문 ‘산남 두꺼비마을신문’에 보여준 각별한 애정. 이 전 법원장은 이 신문 창간준비 2호(2008년 12월31일자) 7면 ‘추천 책’이라는 코너에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리처드 칼슨·도솔·2004)’ 등 3권의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관을 ‘커밍아웃’했다. 

1월23일에는 이 신문의 어린이 기자 14명으로부터 집단 인터뷰를 당하기도 했다. ‘당했다’는 표현은 어떤 조율도 없이 튀어나오는 어린이들의 질문공세에 마치 취조를 당하는 수준으로 응했기 때문이다. 유난히 권위를 내세우는 법조계가 이렇게 언론에, 그것도 동네신문에 무방비로 빗장을 푼 것은 전무한 사례다. 
이날 인터뷰는 결과적으로 이임 기자회견이 됐는데, 인터뷰 내용은 이 신문 서준기(산남초 6) 기자의 시선을 통해 두꺼비마을신문 2호(2009년 1월30일자) 8면에 실렸다.

사정없이 쏟아진 예리한 질문들
인터뷰 장소는 호텔 스카이라운지를 연상케 하는 법원 9층 ‘하늘마당’이었다. 회견장에 들어서는 이재홍 전 법원장의 첫마디는 “웬 기자 분들이 이렇게 많이 오셨나?”였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이 전 법원장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듯 “안경도 많이들 꼈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라며 또다시 덕담을 던졌다. 그러나 “하늘마당에 법원 외부인사가 들어온 것은 검사들 빼고는 처음”이라는 인사말에는 어린이 기자들보다 따라온 어른들이 더 감동하는 반응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재판은 무엇이었나요?” 사전탐색도 없이 예리한 질문이 던져졌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 전 법원장은 “전직 국정원장 재판 두 번이었다. 모두 전화도청 사건이었는데, 피고인들이 부인해 어려웠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에 대한 재판은 사회적으로 너무 이슈화돼 있어서 평생에 가장 부담스러웠던 재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 이재홍 전 청주지법원장은 지난달 23일 산남 두꺼비마을신문의 어린이기자 14명과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임 기자회견이 됐다.
다음 질문은 더 당돌했다. “가장 후회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이 전 법원장은 마치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처럼 상투적으로 “잘 생각이 안 나는데…”라며 잠시 뜸을 들였다. 이어진 답변은 “대학 때 으레 피우는 줄 알고 담배를 배운 것이다. 지금도 가끔 입에 댄다. 술을 마시면 피우게 된다”였다. 왠지 예봉을 피해간 듯.  
 
“원흥이, 두꺼비도 사람도 좋은 성공사례”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굉장히 고민하다가 무죄를 밝혔을 때”라는 예상 가능한 대답과 함께 “현재의 새 청사로 옮긴 것”이라는 답변이 이어졌다. 이후 “다른 법원과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전국 최고의 시설을 가진 법원이다. 이런 장소는 상상도 못한다. 정말 천양지차고 최고의 환경이다”라며 새 청사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어린이 기자들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법원이 위치한 ‘산남동 원흥이 마을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갔다. 이 전 법원장은 이에 대해 “산남동 전체에 녹지를 확보하면서 숨 쉬는 공간이 생겼다. 법원 앞 정원 같은 느낌이다. ‘두꺼비도 좋고 사람도 좋은’ 성공사례다. 법원이 이곳으로 온 것도 여러분 부모님들이 이사 온 것과 똑 같은 이유다. 살기 좋고, 반듯하고…”라고 답했다.

그런데 사법고시는 한 번에 붙었나요?
아이들이 생각하는 법원장은 과거 ‘학창시절의 수재’였는지 “사법고시는 한 번에 붙었나요?”라는 질문이 불쑥 던져졌다. 1차 시험을 보고 이듬해 2차 시험을 봤다는 얘긴지 “1차, 2차 시험을 각각 한 번에 합격했다”는 대답이 나왔다. “우와~” 일시에 감탄사가 터졌다.
  
“어렸을 때 꿈이 법원장이었나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교장이 꿈이 아니고 선생님이 꿈인 게 맞듯이 법원장이 꿈이 아니고 판사가 꿈인 게 맞다. 법원장은 직업이 아니라 직책이다”라고 설명한 뒤 “그러나 어렸을 때의 내 꿈은 막연하게 과학자였다”고 밝혔다.

“그럼 판사일 말고 잘하는 게 있나요?” 법원 출입 기자가 물었다면 시비조의 질문일 텐데 이 전 법원장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노래는 못하고 운동은 테니스, 볼링, 수영, 골프까지 골고루 잘하는 편이다. 영화보고 책보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한다”고 답했다.

누가 부러우세요, 더 높은 사람?
법원장은 어떤 사람에게서 부러움을 느낄까? 아이들은 ‘대통령’이라는 답변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전 법원장은 “더 높은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부러운 것은 아니다. 남을 도우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부럽다. 테레사 수녀처럼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장기려 박사나 슈바이처 같은 사람들이 진짜 훌륭한 사람이다”라며 아이들이 다양한 꿈을 갖기를 권하는 듯 했다. 

이 전 법원장은 시종일관 여유 만만했지만 “판사가 된 뒤 1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가족과 함께 체험했고 여행했던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초임시절 강릉에서 근무할 때가 자유롭고 즐거웠다”고 지난 판사생활을 돌아봤다. 자유인을 동경하는 법원장에게 이 아주 특별한 기자회견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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