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 Life Balance, 일과 생활(삶)의 균형)'. 지난주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심판회의 사건을 기다리다, 무심코 집어든 책에 소개된 내용이다.

'적절하게 일하고, 적절한 휴식과 여가를 보장하자' 이러면 제목만 보고도 내용을 알 수 있을 텐데 그 글의 제목은 이러했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노동부가 만든 책자가 '다. 그렇지'하는 선입견에다, 제목부터 맘에 안든다. 대수롭지 않게 봤다.

드디어 내가 노동자위원(공식명칭은 '근로자위원')으로 참여하는 부당해고 심판 사건이 시작됐다. 이 사건을 신청한 해고 노동자의 징계사유는 근무태만, 업무지시불이행(무단결근, 지시사항거부, 교육거부 등), 업무능력 결여 등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그런데 업무지시 불이행의 내용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토요일이거나 근무시간이 끝난 야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주5일제 사업장이기 때문에 토요일은 근로의무가 없는 날이고, 근무시간이 종료된 이후이기 때문에 업무명령도 강제성이 없는 시간이다.

더욱이 해고노동자는 "토요일 휴일근로지시도 거의 다 따랐다. 부득이 집에 경조사가 있던 날 두세 번 거부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교육거부란 것도,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 책 한 권 주고 자습하고 가란 식이였고, 그것도 다섯 달 기간중 두세 번 빠졌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노동자를 해고시킨 사용자는 반박한다.

"다른 직원들은 회사를 위해 개인사정이 있어도 다 참고 하는데, 이 노동자만 이기적으로 토요일 휴일근무를 하지 않았다. 만약 본인이 업무실력이 부족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본인의 능력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이 불평만 늘어놓는 (회사의)악성부채같은 존재다. 도무지 반성을 모르는 사람이다."

이 사용자의 주장은 '모든 것이 조직을 위해서'다. 희생하지 않는 '개인'은 존재할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란 용어는 이 사용자에겐 '강아지가 풀 뜯어먹는' 소리다.

이 노동자는 공무원으로 시작해 민간기업으로 전환한 이 회사에 30년 가까이 근무한 50대의 여성노동자다. 이 여성노동자에게도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란 용어도 '강아지가 풀 뜯어먹는' 소리였다.

잘리지 않기 위해, 깁스를 하고도 전신주에 올라가야 했다. 휴게시간에 병원가는 것도 사치였고,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도 사실은 구실에 불과했다. 내가 본 것은 '효용가치가 다해버린 노동자가 조직을 위해서 사직'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사직하지 않은 것일 뿐이었다. 그로 인해 '왕따'가 뒤따랐고 징계사유가 발생한 것이다. '조직충성형'만을 요구하는 노무관리의 비정함이었다. 그 간단한 사실을 두고서 노동위원회에서는 장장 1000쪽이 되는 서류와 증거자료를 앞에 두고서 고상한 법적 씨름이 진행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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