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산남3지구는 두꺼비 집단서식지인 ‘원흥이방죽’으로 유명합니다. 제 기억으론 원흥이방죽의 두꺼비를 처음으로 보도한 곳은 ‘우리신문’이라는 청주 산남·분평동 동네신문입니다(우리신문은 한우리신문으로 제호를 교체한 후 재정난으로 폐간했습니다)

저는 충청리뷰 이재표 기자가 우리신문에 몸 담을 때 우연히 사무실에 놀러갔다 두꺼비 사진을 처음으로 봤습니다.

그 당시 기사 아이템이 궁했던 저는 두꺼비 사진과 기사를 베껴 송고했고 도내 언론들도 일제히 두꺼비를 집중 조명하면서 갑자기 원흥이방죽이 유명세를 탔습니다.

제가 도청 기자실에서 우리신문의 기사를 베낄 때 모 중앙일간지의 A선배가 “두꺼비가 기사가 되냐”고 핀잔을 준 적이 있습니다.이 같은 핀잔은 나중엔 “사람보다 두꺼비가 중요해?”라는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한겨레신문의 오윤주 기자 등 일부 기자들은 ‘친환경 개발’의 아이콘이 두꺼비라는 논리로 맞섰지만 상당수 기자들은 원흥이방죽의 두꺼비 보전에 부정적이었습니다.

특히 청주 산남3지구 개발을 추진했던 토지공사 간부들은 환경단체 회원들과의 충돌이 장기화되자 두꺼비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폄하했습니다.

그러나 2년여만에 토지공사와 환경단체인 ‘원흥이생명평화회의’가 극적으로 두꺼비 보전에 합의했고 청주 성화지구 택지개발을 맡은 주택공사는 맹꽁이 서식지가 발견되자 곧바로 맹꽁이 보전을 약속하는 등 친환경 개발이 정착되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얼마 전 원흥이 생명평화회의에서 활동했던 신재인씨가 간암으로 투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비슷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신씨를 잘 알지 못하지만 도청과 토지공사 농성에서 항상 앞장섰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습니다.

청주지역 택지개발의 이정표가 된 원흥이방죽은 시민들의 휴식처로 정착됐지만 정작 두꺼비 보전을 위해 애썼던 신씨의 투병은 안타깝습니다. 아무쪼록 도청과 토지공사 농성에서 몸을 던져 싸우던 신씨의 건강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HCN충북방송 보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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