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정월 초이튿날, 날씨도 풀리고 연휴 끝이라서 그런지 산성으로 동물원으로 어린이회관이며 눈썰매장 그리고 박물관에도 나들이에 나선 시민들로 북적였습니다. 가족과 함께 산성마을에서 닭볶음탕으로 점심을 먹고 내려오는 길에 국립청주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진작부터 벼르던 송인택·이광자 부부가 기증한 고서 전시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개인이 수장한 것으로는 꽤나 다양하고 상당한 분량이었습니다. 전시 말미, 기증자의 말씀 '떠나보내기' 중에는 "고서들을 처분하면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나 그러기에는 그간의 정성이 너무나 아쉬웠다"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은 어느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라 결국은 공유하게 되리란 믿음으로 떠나보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뒤늦게 고서들이 올바른 주인을 찾아가니 무거운 짐을 벗은 듯 홀가분하다"고 하였습니다.

기증자는 IMF 당시 건축사사무실 문을 닫아야 했고, 부인은 교직에 복귀하여 생활인이 되어야 할 정도였지만 경제적 궁핍 때문에 그들의 삶의 궤적을 돈으로 바꾸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들의 정성은 전문가의 손에 의해, 조선시대의 책읽기와 공부법, 책에 대한 얘기들 그리고 금속활자본과 목판본 등 인쇄발달사까지 아우르는 '송인택·이광자 기증고서, 옛 책' 기획특별전으로 환생해 그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멋지잖습니까. 우리가 자랑하는 직지(直指)도 그 가치를 알아 본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하고, 모리스 쿠랑이 조선서지를 통해 기록해 내지 않았다면 오늘날 그 흔적조차 찾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송인택·이광자 콜렉션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또 있습니다. 전시된 고서 곳곳에서 엿볼 수 있는 선인들의 말씀, 그 가운데 '맹자 들여다보기' 한 대목은 오늘의 세태를 미리 알고 경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올바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고, 올바른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으며, 다스려지면 나아가 벼슬하고, 혼란해지면 물러나 은거하는 것이 백이(伯夷)였습니다. '어느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고, 어느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겠는가' 하고는 다스려져도 나아가 벼슬하고, 혼란해져도 나아가 벼슬하는 것이 이윤(伊尹)이었습니다. 벼슬을 할 만하면 벼슬살이를 하고, 그만두어야 할 이유가 있으면 그만두고, 오래 머물러 있을만하면 오래 머물러 있고, 빨리 떠나야 할 이유가 있으면 빨리 떠나는 것이 공자(孔子)였습니다. 세 분 모두 옛날의 성인(聖人)이셨습니다. 나는 여태까지 그처럼 할 수는 없었지만, 소원이라면 공자를 본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선비는커녕 재물과 영달에만 눈이 먼 선비 아닌 양반 관료, 정치인과 곡학아세(曲學阿世)가 부끄러운 줄조차 모르는 지식인과 그 패거리들 그리고 수단 방법 불문하는 졸부들만 넘쳐나고 있습니다.

나라 안에서는 아흔아홉 섬 부자가 한 섬지기 가난한 이를 등치고 글로벌 세상에서는 힘 센 부자나라는 가난한 나라 백성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배를 곯아 죽는데 다른 한 곳에서는 배가 터지다 못해 생병을 앓아야 하는 극과 극의 삶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문을 나서며 기축년 '소' 해에는 함께 살아가는 평등하고 보편한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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