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경찰이라는 성토가 비등하고 있다. 휘발성을 가진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이 폭발하여 전국적인 추모제가 열리는 등 경찰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기류가 형성된 것이다. 경기도 군포의 살인마를 검거한 것이 경찰인데, 거꾸로 살인경찰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이 현상에는 실로 중요한 본질이 내재해 있다.

경찰도 사망자가 있었으므로 침통할 것인데도 철거민이 다섯명이나 죽었으므로 살인경찰이라는 기막힌 비난을 비켜가지 못했다. 경찰에 십자포화가 집중되면서 과잉진압의 주체가 경찰인 것으로 각인되어 버렸다. 나는 경찰이 그런 비판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한국 경찰 자체에 살인성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가정을 해 보자.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용산에 스위스 경찰이나 이집트 경찰이 배치되었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엄정한 법 집행, 성장발전을 저해하는 세력 척결, 단호한 처벌, 재개발의 속도전, 강력한 공권력 등을 상부로부터 지시받는 상황에서는 그런 참사(慘事)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경찰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지금과 같은 공안정국과 강경정책이라면 누가 경찰청장이 되더라도 유사한 비극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고 누가 지휘를 하더라도 악순환의 반복이 확실하다. 그런데 30일, 이명박 대통령은 경찰에 잘못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고 그 징표로 김석기 경찰청장 임명 강행을 선언했다.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는 결국 이런 사태가 경찰의 문제가 아니라 현정부와 정권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민주당의 대변인인 노영민 의원은 이에 대해서 지난 22일, '이런 끔찍한 폭력진압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예단했다. 그리고 그 구조적 원인으로 파시즘을 지목했다. '독재타도!'를 외치며 긴급조치로 옥살이를 한 경험의 노영민 의원에게는 작금의 사태가 개발성장의 무한독재로 보였을 것이다.

잘 알려진 것과 같이 이명박 정부는 상위계층, 상류계급, 식자층, 기득권계층, 친미분단, 경제성장, 대북 강경책 등을 중심으로 하고 한나라당이라는 보수우익을 사상적 기반으로 한다. 모든 정권은 지지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보수우익의 정치적 결집을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회사가 아닌 국가가 가져야 할 도덕과 윤리 그리고 체제와 사상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상위계층과 상류계급에 초점을 맞추면서 국가의 성장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모든 인간은 다른 존재의 도움과 동정으로 살기보다는 자기 주체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선거에서 많은 기층 민중들은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기층 민중들이 일반적으로 잘살게 하겠다는 말을 믿었다기보다는 자신도 상위 1%를 동경하기 때문에 벌어졌던 현상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계급의식보다 세계관(世界觀)이 중요하다.

자신의 생활수준과 관계없이, 미래의 세상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세계관은 자기 계급의 이익과도 배치될 수 있다. 그 반대도 진리다. 즉, 상위 1%라고 하더라도, 그래서 부유하고 학식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미래에는 평등하고 인간다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는 민중적 전망을 가진 사람이다.

시민민중진영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보수의 기치를 유지하면서 무난히 임기를 마치기를 기원하고 있다. 큰일이 일어나서 정권이 전복(顚覆)이라도 되는 날이면, 보수와 진보의 교차정권이라든가 상호보완이라는 균형이 깨지고 이데올로기 투쟁과 정치적 악순환이라는 어두운 길로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은 어설픈 경제개발독재의 정책을 버리고 보수의 진정한 길을 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살인경찰의 본질인 살인자본과 폭력경제를 포기하고 인간주의 정치, 평등주의 정책, 하층 민중에 대한 이해 등에 노력하기를 바란다. 용산 참사로 목숨을 잃은 분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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