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오 사회문화부 차장

설 명절을 맞아 장애인 시설인 청주 베데스다의집에 취재 협조를 구할 때부터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때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밀어 닥치다 금새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는 ‘끓는 냄비’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복자 원장은 기자의 옹색한 마음을 꿰뚫기나 한 듯 생색내기 복지시설 위문이나 취재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던진 김 원장의 말 한마디.
“장애인시설 식구들은 상추쌈에 고기 먹으면 안되나요?”

몇 년 전이었단다. 한 방송사에서 취재 나와 식사하는 장면을 촬영하려다 말고 식탁에 놓인 고기와 상추쌈을 치워 달라고 주문하더란다. 장애인시설이니 불쌍해 보여야 한다며.

김 원장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복지시설에 대한 몇 가지 편견과 꼴불견을 소개(?)하며 사회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쳤다.

김 원장을 가장 슬프게 만드는 것은 복지시설 식구들은 못 먹고 못 입어야 한다는 편견이다.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서, 혼자 움직이지 못하고 누군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고기에 상추쌈 먹으면 안되고 남루한 옷에 자주 씻지 못해 냄새 나야 하냐는 것.

“복지시설에는 김치냉장고가 보통 2~3개 있어요. 그런데 그걸 보면 사람들은 먹고 살만 한가보라고 비아냥 대요. 우리집(베데스다의집)만 해도 식구가 서른명이 넘는데 김치냉장고 몇 개는 있어야 되지 않나요. 배추만 400포기 이상 김장 했는데….”

또 하나는 장애인시설 원장은 천사 같을 거라는 편견이다.
항상 온화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목소리는 절대 커지지 않는 모습일 거라 생각하는데 실제는 정 반대일 때가 많다는 것.

정신연령이 두 세살 밖에 안되는 자폐증 청년. 장애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배타적이로 변한 성격. 때로는 이유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지적장애. 이들과 어우러져 살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목소리가 커지고 때로는 악다구니도 써야 한단다.

2000년 여름 김 원장은 그런 원생의 폭력에 심각한 중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그 후유증으로 9시간의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런 것들은 시설을 운영하다 보면 몇 번씩 겪게 되고 감수해야 하는 일일 수 있지만 정말로 김 원장을 화나게 하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위해 장애인을 활용하는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이다.

“한번은 꽤 유명한 분이 위문차 방문하셨어요. 사과 2박스와 카메라를 대동해 오셨더군요. 2층 사무실에서 원장을 찾는 것을 봤지만 모른 척 했어요. 자기들 끼리 현관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갔는데 사과박스를 열어보니 온통 설익은 풋사과 뿐이었어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모두 마당에 내 던져 버렸죠.”

김 원장은 부피가 큰 화장지 박스를 배경으로 식구들을 병풍삼아 사진 찍고 떠나는 사람 보다 만원이라도, 아니 천원이라도 살며시 쥐어주는 동네 할머니가 더 고맙단다. 경제난에 복지시설 식구들의 고통은 건강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의 몇 곱절이 된다고 한다.

김 원장의 이야기에 처음의 미안한 마음에 부끄러움까지 더해져 안녕히 가시라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어느 아주머니의 인사말에도 대꾸하지 못한 채 베데스다의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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