和而不同은 是是非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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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而不同은 是是非非에서
  • 충북인뉴스
  • 승인 2009.01.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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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청주송절중 교사

‘교수신문’이 설문조사를 통해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선정했다. 세밑을 달구었던 국회 본회의장 점거농성, 방송법 개악저지 총파업 등 바라보기 불편했던 일련의 사태를 보며, 참 적절한 새해의 화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영복 선생은 논어의 원문을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고 공존하지 못한다’라고 재해석했다.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어울려 조화를 이루려는 태도를 ‘和’라 한다면, 모든 견해가 같게 되기를 구하지 않는 것을 ‘不同’이라 해석할 수 있다.

화이부동은 민주주의 원리를 함축한다. 이것은 공론의 영역에서 ‘是是非非’하는 자유와 권리가 전제되고 존중될 때, 다양성과 차이가 존중되고 조화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왜 서로 다른지’에 대한 ‘시시비비’가 없는 ‘화합’은 전체주의이거나 다수의 횡포일 뿐이다.

아고라 경제논객 ‘미네르바’의 체포소식이 연일 핫뉴스가 되고 있다. ‘미네르바 신드롬’을 일으켰던 그의 체포소식이 전해지자 “주가지수 3000을 예언하며 나를 믿고 투자하라 부추기던 분도 유언비어 유포죄로 체포해야한다” “그를 특채하고 싶다-증권사” “기는 만수위에 뛰는 백수” 등 누리꾼들의 풍자와 토론이 아고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네르바 신드롬’의 본질은, 무능하고 믿을 수 없는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기득권층의 전문가들이 눈치를 보며 말하지 못한 사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통쾌하게 말한 카운터 파트너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그를 구속하고 그의 신상과 이력이 보잘것없음을 밝힌다고 정부의 무능이 감춰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홍길동’이 신드롬을 일으킨 것은 당대 탐관오리들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카운터 파트너였기 때문이지, 그가 서얼이거나 정규학력을 갖지 못했다고 해도 상쇄되지 않는 것처럼. 미네르바의 체포를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보도한 로이터 등 외신들의 보도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명 ‘마스크 금지법’ ‘사이버 모욕죄’와 같이, 시시비비하는 다른 주장을 강압하는 독선과 일방통행이 우리사회에 얼마나 넘쳐나는지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앞서 지적한 국회 본회의장 점거농성이나 방송법 개악저지 총파업을 대한 언론의 태도도 대부분 ‘경제도 어렵고 먹고살기 힘든데, 왜들 싸움질이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왜 서로 싸우는지’ ‘누구의 주장이 좀 더 합리적이고 정당한지’에 대한 ‘시시비비’가 치열해져야 한다.

왜 야당들은 국회의 본회의장 점거농성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쓰게 되었는지, MB 악법이라 불렀던 법령들의 찬반논리와 관점에 대한 시시비비가 있어야 한다. 방송법개정을 추진한 정치세력의 그럴듯한 문화적 논리와, 보수정치와 재벌기업이 언론을 지배하고 더 많은 경제적 이권을 나누려는 의도라고 바라보는 반대논리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여당이 추진한 ‘금산분리완화’나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방송법 개정’이 결국 누구에게 이익을 줄 것인지, 그들이 추진한 ‘교육세와 농어촌 특별세의 폐지’, ‘의료법 개정’이 누구의 불이익을 강요하고 있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종부세 감세와 비정규직 확대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시비해야 한다. 시시비비하여 여론을 형성해야 서로 다른 것이 조화할 방도를 찾게 되며, 이것이 언론의 임무이고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

조선 초기의 유학자들은 염치(廉恥)를 중요시 하였다. 조선초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게 한 ‘염치사상’의 근저에는 성균관이나 사간원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있었다. 토론과 비판은 자신들의 언행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잘못을 깨닫게 하며, 양심에 부끄러움을 알도록 하는 기제이다.

말과 행동이 달라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한 오늘의 세태를 바라보며, 시비를 가리는 토론과 비판이 절실함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당초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민주주의의 희망은 ‘화이부동’에서 나온다. 진정한 화이부동은 ‘시시비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오늘의 사회를 보다 염치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도, 좀 더 치열한 토론과 비판이 있어야 하며, 이를 보장하기 위한 공론의 영역과 표현의 자유는 수호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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