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CBS사장

이정식 CBS 사장(49)을 말하려면 49년 역사상 최초의 사원출신 사장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와야 한다. 그 만큼 이것은 ‘커다란 사건’이었다. 지난 6월 5일 CBS 재단이사회는 사상 첫 사장공모제로 이정식 사장을 선출했다. 그래서 권호경 전 사장의 3선 연임 시도와 이에 따른 노조의 사장퇴진운동으로 야기된 극심한 혼란을 수습할 수 있었다. 노조는 당시 265일이라는 한국언론사상 최장기 파업을 벌였다.

이 사장은 지난 98∼2000년까지 CBS 청주방송에서 보도국장과 본부장으로 일했고, 군복무를 증평에서 한 인연이 있다. 햇수로는 5년이지만 그는 가는데 마다 ‘청주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본부장 재임시절 IMF로 중단됐던 방송국 사옥 건축을 재개, 완공했으며 음악회를 비롯한 각종 부대사업을 연중 전개하여 99년 전국평가에서 청주본부가 1등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그는 서울에 가더라도 교회는 청주로 다니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주 청주가경교회에서 예배를 본다. 지난 주말 청주에 내려온 이정식 사장을 만났다.

- 아무래도 사장으로 선임될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한데 당시 마음고생이 심하셨죠?
“말도 못했죠. 처음에는 주변에서 내가 사장 될 가능성이 10%도 안된다고 보았습니다. 사장추천위에서 27명 중 3명을 뽑는데 들어간 것이 결정적인 힘이 됐고, 마지막에 이사 18명 중 16명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냈습니다. 사장이 안되면 나의 입지가 어려워지지만, 후배들이 사원 사장을 열망해 결과를 생각지 않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교계에서는 목사가 사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사회와 언론계·방송국 여론은 방송 전문가가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CBS는 실제 지금까지 단 한사람의 사장만 빼고 모두 목사출신이 집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역사가 45년이다. 이에 대해 사회 일각에서도 비판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높았다.

- 이 사장이 취임하고 난 뒤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 노사분규 기간 동안 불이익 당한 노조원들을 1, 2 단계로 나눠 전격적인 승급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래서 인사 불균형을 해소하고 사원간 갈등요인을 없앴습니다. 또 침체된 청취율을 높이기 위해 뉴스를 대폭 보강했지요. 매 30분마다 하던 뉴스를 정각에도 해서 빠른 뉴스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방송위주의 CBS 인터넷을 뉴스 서비스 체제로 바꿔 다른 인터넷신문과 경쟁하고 있는 것도 변화중의 한 가지입니다. 특히 기자들이 현장에서 취재한 것을 전혀 자르지 않은 ‘NO CUT’ 뉴스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앞으로 CBS 인터넷이 새로운 관심을 끌 것입니다.”

과거 독재정권시절, CBS는 감히 아무도 말할 수 없는 뉴스를 과감하게 방송, ‘CBS는 뉴스가 강하다’는 찬사를 받지 않았는가. 그래서 당시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는 동시에 실시간으로 뉴스가 서비스되는 ‘강적’ 인터넷 신문보다 더 앞 선 체제를 구축해 CBS를 최고의 방송으로 만들겠다는 것.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는 “전국에서 희망하는 신문들과 뉴스를 교류해 기사를 공유할 생각이다. 충청리뷰·오마이충북에서 생산하는 뉴스도 물론 싣고 싶다. 그래서 전국 네트웍체제를 구축하고 각종 뉴스를 전달한다면 뉴스부문에 뛰어난 방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21세기에는 다양한 언론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CBS가 지향하고 있는 언론관이 궁금합니다.
“가장 공정한 언론이 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현재 언론들이 정권에 추종하는 언론과 비판하는 언론으로 나뉘어 있는데 우리는 ‘정도 언론’을 지향합니다. 저는 정권에 추종하거나 무조건 비판하는 것 모두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서 CBS는 국민이 원하는 방송, 가장 신뢰받는 방송이 될 것입니다. 직원들이 활기찬 분위기에서 모두 열심히 일하고,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해 침체됐던 청취율도 많이 높아졌습니다.”

-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 의리입니다. 저의 아버지가 언론계 출신이신데 평소 명분과 의리가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어요. 제가 78년에 CBS 기자로 입사했는데 80년 12월, 5공 군부세력들에 의한 언론통폐합으로 43명의 기자가 모두 KBS로 가게 됐습니다. 당시 함께 갔던 선배·동료들이 ‘CBS 뉴스가 부활되면 다시 간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막상 88년 뉴스가 부활되자 저를 포함해 단 2명만이 돌아갔어요. 월급 적지, 장래 불투명하지 앞 날이 뻔하니까 결단을 못 내리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CBS로 돌아가는 것이 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장에 출마할 때도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사원 사장을 열망하는 후배들과의 의리를 지켰죠.”

틈틈이 일기를 쓰고 독후감을 정리하는 습관을 가진 그는 ‘북경특파원’ ‘기사로 안 쓴 대통령이야기’ ‘워싱턴 리포트’ ‘이정식의 청주파일’ ‘권력과 여인’ 등 5권의 저서를 냈고, 몇 번의 대형 무대에도 섰던 ‘아마추어 성악갗의 소질을 살려 애창가곡집 CD도 선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그는 곧잘 노래 한 가락을 꺼내 놓는다.

서울생인 이 사장은 경복중·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CBS 정치부장·워싱턴 특파원·청주방송 본부장·부산방송 본부장·해설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후배들에게 ‘나도 열심히 하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그는 CBS를 정말 좋은 회사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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