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선 CJB청주방송 PD

“만약 어떤 산적이 단 일 주일만 마을을 다스린다 하자. 그놈들은 아마 하루도 안 돼 마을을 거덜 내고 말 것이여. 그러나 일 년을 다스린다면 추수 때까지는 기다리겠고, 사람들도 살려두겠지. 만약 십 년을 다스린다면 계획도 세울 거여. 다 굶어 죽으면 안 되니까 밥과 옷도 주면서 다스리겠지. 삼십 년을 다스린다면 애를 낳느냐 안 낳느냐까지 신경을 쓸 거다. 삼십 년을 다스리는 산적, 고것이 바로 국가란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에 나오는 구절이다. 국가가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는지를 다소 파격적인 표현이지만 탁월하게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고 해도 공동체를 장기간 책임지고 관리해나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비전과 계획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대선에서 모든 가치에 우선해서, 심지어는 일부 도덕성에 큰 결함이 있어 보이는 것조차 애써 눈감으며 경제살리기에 표를 모아줬고 그래서 이명박정부가 출범했다. 그리고 1년이 흘렀고 공감하는 대로 사회적 환경은 급변했으며, 국민들 상당수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후퇴하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주된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살림살이는 갈수록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선상에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 믿는 신뢰와 희망이 있다면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을텐데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염려하는 목소리만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권력의 속성상 권력집단은 향후 지속적인 집권을 위해 노력하는게 자연스럽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난 1년의 시간은 집권세력이 과연 지속적으로 권력을 담당하기 위한 의욕과 비전을 가졌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행태가 태반이었다. 흡사 <빛의 제국>에서 말한 것처럼 단 일주일만 마을을 다스리려 온게 아닌가 싶을만큼 충격적인 일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수십년에 걸친 희생과 투쟁을 통해 쌓아온 절차적 민주주의는 과도한 법질서 우위 논리에 의해 기초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통해 국민들에게 심어진 민주적 권리행사의 자신감조차 근본에서부터 의심받고 있는 형편이 되었다.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이룩한 사회적 성과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일이 전광석화처럼 ‘속도전’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슬픈 현실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세력이 국민들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 가장 손쉬운 방법은 국민들을 지치게 하여 아예 무관심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또하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어느새 우리는 그 둘을 번갈아가며 겪고 있는듯 싶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첫째는 국민들의 짜증섞인 무지다. 국회파행을 지켜보면서 일반적으로 내뱉는 말들이 그 증거다. ‘제 역할을 못한다’거나, ‘또다시 구태를 반복한다’는 짜증스런 반응으로 그친다. 그 근본원인을 짚어 제대로 비판하게 하는 목소리가 너무 적기 때문일 것이며 그 원인의 뿌리는 눈감고 귀막은 언론이다. 또 다른 원인도 언론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최상재 위원장이 새해 첫날 밝힌 ‘대국민 호소문’에서 “총파업을 통해 힘없고 가난한 이웃의 밥그릇을 지키겠다”며 지지와 격려를 부탁했는데, 그간의 언론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반성한 의미라고 본다. 사회적 의제 설정에 게을렀으며 힘없고 가난한 이웃의 삶을 살피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조건을 우선 챙겼던 언론이 미디어관련 법안의 상정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으며 대오각성한 자기 고백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나마 좌절을 넘어선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해 11월 25일, 경향신문이 발표한 특별기획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를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기획으로 칭찬하고 싶다. 그 누구도 감히 입에 담기 어려워하는 분위기에서 시장만능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우리 사회의 앞길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담았으며 실제 이어진 연재를 통해 뛰어난 실천력을 보여주었다.

그에 버금가는 충청리뷰의 이슈파이팅을 응원하면서, 충청리뷰가 2009년의 기치로 ‘올곧은 말, 결고운 글’ 정신을 드높이겠다고 선언한 점을 높이 산다. 충청리뷰가 우리 지역의 언론이 우리 공동체의 건강한 진보를 위한 전선에 앞다퉈 나설 수 있게 하는 촉매제가 되어주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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