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장영숙 수녀·조순형 전도사
돈으론 행복해질 수 없어, 정신적인 가난이 더 큰 문제

캐럴도 울리지 않는다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장영숙 수녀와 조순형 전도사를 지난 21일 도시산업선교회에서 만났다. 성경을 보면 2000년 전 예수는 그 시대의 가난한자, 억눌린 자, 소외된 자에게 왔다고 한다. 예수는 그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자유’와 ‘복음’을 전했고, 인류를 대신해 십자가까지 지면서 천국으로 인도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의 눈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여기 세상이 배척한 지적장애인·노동자들과 아픔을 나누며 복음을 실천한 두 사람이 만나 ‘가난’과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장영숙 수녀(사진 왼쪽)와 조순형 전도사는 2시간 걸친 대담을 통해 "종교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말도 행동도 거칠어져 있더라
“30년 동안 현장을 뛰다보니까 어느새 말도 행동도 거칠어져 있더라.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다시 되찾아야 할 텐데….”조순형 전도사가 일종의 자기 한탄을 하자 장영숙 수녀의 대답이 절묘하다. “나는 장애인들과 30년 넘게 살다보니 어딘지 모르게 언어도 단순해지고 어눌해졌다. 말보다는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이들은 왜 목회를 하는가. 그것도 노동자와 지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이에 장 수녀와 조 전도사는 같은 답을 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봤는데 어찌 떠날 수, 버릴 수 있겠느냐고.” 시대는 변화했지만 여전히 소외된 자는 소외된 자인 것이 세상의 모순이다.

조 전도사는 “70년대 노동자들은 산업역군으로 온 몸을 바쳤지만 결국 이익을 가져간 것은 사주였다. 80년대 일명 ‘마이카’시대라고 해 노동자들이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멀리 나가 삼겹살을 구어먹을 수 있는 호기를 누렸지만, 곧 90년대 후반 IMF로 쓰러져버렸다. 이 후엔 세계화 미명하에 비정규직 확산 등…. 처음엔 노동현장에서 선교를 이야기했는데, 나중엔 노동현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더라”고 회고했다. 이어 “비정규직 법안이 생기면서 터진 게 바로 이랜드 사태다. 이 문제에 개신교가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여기에는 자기 성도도 있었을 텐데 교회가 정치적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안일만 유지하려는 태도에 화가 난다”고 부연설명했다.

우리들의 천국이 건설되려면…
이에 장 수녀는 “그동안 종교가 한국사회를 지탱해오는데 정신적인 축이 된 것은 인정한다. 한 현인이 이 세상은 더 이상 하나님의 손도, 발도, 눈도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종교인들이 각성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나부터도 반성하게 된다. 우리가 외부적으로 잘 살고, 물욕이 넘쳐나게 됐지만 내부적인(정신적인) 빈곤과 가난은 더욱 심해졌다”고 말했다.

조 전도사는 현재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부자들을 위한 정책들이 펼쳐지고 있고, 일명 ‘고소영’으로 대변되는 주류층들은 자신의 이익을 앞세워 침묵하고 있다”는 것. 정 수녀도 “집권하면서 먼저 복지예산 10%를 삭감했다. 정부가 정책을 입안할 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 땅에 하나님이, 예수님이 건설하고자 하는 천국은 아직 때가 안 된 것 같다. 조 전도사는 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땅의 민중으로부터 배척받으면 종교가 과연 어디에 설 수 있을까. 종교인들은 지금부터라도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민중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개입해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주는 것이 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장 수녀는 “어쩌면 교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정권의 반그리스도적인 부분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각성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나눔과 실천하는 모습을 종교가 되찾아갈 때 우리는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 수도자들은 느끼겠지만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한 것은 아니다. 현재 자리에서 참된 삶을 실천하는 것,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올 크리스마스마스도 장 수녀는 여전히 쿠키를 굽고 캐럴송을 부르며 양로원 어르신들과 성탄의 기쁨을 나눌 예정이라고 한다. 조 전도사도 성탄예배를 준비 중이다. 이날엔 교인들이 각자 정성껏 만들어온 음식을 나눈다. 2000년 전 어두운 세상 가운데 빛으로 오신 예수. 세상은 여전히 깜깜해 보이지만, 낮은 자리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어 우리는 오늘 희망의 불꽃을 꺼뜨릴 수 없다.

그들이 사는 세상, 닮은꼴도 많아라
‘소외된 이웃 통해 신을 만났다’

조순형 전도사· 청주도시산업선교회 대표(61)
 

왜 성직자가 됐나-77년 뒤늦게 신학대를 졸업하고 정진동 목사의 산업선교에서 비전을 보았다. 정진동 목사와는 친척관계이기도 함.
목회활동-주로 노동자들의 삶에 천착해 현장에 나가 복음을 전파했다. 노동자들과 웃고 울으며 도시산업선교를 30년째 같은 자리에서 하고 있다. 예수님이 소외된 자 가난한 자에게 다가갔던 정신을 구현하는 게 목표다. 현재는 도시산업선교의 바통을 이어받을 후계자 양성이 고민이다. 교인은 30명 정도. 모두 경찰서 한번 씩 끌려가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사는 게 팍팍한 분들이다. 주일예배와 성경공부 및 상담을 하고 있고 설교는 사회문제에 집중한다.


장영숙 수녀·보혈선교회 한국지부장(62)

왜 성직자가 됐나-8남매 중 2명이 수녀, 2명이 신부님이 됐다. 신앙은 집안의 전통이자 재산이다.
목회활동- 60년대 수녀가 됐고, 미국으로 건너가 특수교육분야를 공부했다. 대학원까지 마치고 현지에서 교편생활을 하다 81년 남아프리카에서 5년 동안 선교를 했다. 86년 귀국해 충북재활원, 산남복지관, 혜원복지관, 청주성신학교를 설립하고 운영 및 교장 직을 맡아왔다. 장애인들과 부딪치며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고 자평한다. 현재 20여명의 수녀들과 청원에서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으며 농사를 지으며 노동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 가끔 대학에서 강의도 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