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도 못한 불운 딛고 서울대 합격
“한비야처럼 국제구호단체에서 일하는 게 꿈”

충청리뷰 선정 올해의 인물
연말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올해의 인물’이나 10대 뉴스 등을 선정해 무언가 기념할만한 구실을 만들어낸다. 충청리뷰 역시 올해도 이 같은 세태에 가세했다. 다만 유명인사의 명함에 이력 한 줄을 보태주는 ‘선정’이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수도권 집중현상이 가속화되고 브레이크 없는 부(富)의 집중화도 심화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는 그야말로 전설이 돼 타인의 성공에 감동하고 박수를 칠 일도 드물어졌다.  
이처럼 희망이 실종된 시대에 충북도민들은 얼마 전 자신의 일인 양 함께 감격할 만한 뉴스를 접했다. 옥천의 한 보육원 소속 고교생이 서울대학교에 수시 합격한 것이다. 물론 서울대가 대단하다는 학벌지상주의를 찬양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린나이에 견디기 어려웠을 삶의 무게를 딛고 일어선 ‘꼴찌의 성공신화’에 주목한 것이다.
충청리뷰 편집국은 그런 의미에서 옥천고 3학년 이지용 군을 주저 없이 2008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사생아이자 흑인으로 태어났고 9살에 사촌오빠로부터 성폭행, 끝없이 이어진 친척들의 학대, 14살에 출산과 함께 미혼모가 됐고, 2주후 아기의 죽음…. 한없이 불행한 과거를 지닌 이 여인의 현재는 토크쇼의 여왕, ‘보그’지 패션모델, 영화배우(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자산 6억달러(한화 약 9000억원)의 갑부다. 1997년 월스트리트저널 조사 결과 미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3위에 뽑힌 ‘오프라윈프리’의 인생이력이다. 

▲ 부모의 이혼으로 보육원 생활을 해온 이지용 군은 어려움을 딛고 서울대에 합격해 희망을 줬다. 이 군의 취미는 농구와 축구. 보육원 입구 마을에는 ‘마을에 자랑’임을 알리는 현수막까지 내걸렸다.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실직, 끼니를 이을 수도 없었던 지독한 가난, 경기도 수원과 청주의 아동보호시설을 떠도는 동안 초등학교에 입학조차 할 수 없었던 사회적 무관심, 뒤늦은 초등학교 생활은 6학년이 전부였던 아이…. 보육원 출신이라는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옥천고등학교 3학년 이지용(19) 군의 지난날이다. 주목이 되는 그의 미래는 지금부터다. 

이 군은 2009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에서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을 통해 사회과학계열에 합격했다. 청주가 고향이지만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가난으로 인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지용 군은 중학교에 다녀야할 나이에 한 살 아래 동생 인용 군과 함께 옥천군 옥천읍 영실애육원에 맡겨졌다.

기가 막힌 것은 이 군 형제가 의무교육과정인 초등학교에도 제때 입학하지 못했다는 것. 이 군 형제는 보육원에 들어가면서 나란히 초등 6학년에 편입했지만 첫 시험 성적표는 전 과목 꼴찌였다. 덧셈과 뺄셈 정도만 할 수 있는 학력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지용 군은 “특별히 한 것은 없다.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보육원에 돌아오면 밤 10~11시까지는 공부를 했다”고 회고했다. IQ도 보통수준인 이 군이 학년 말에 학급 1등이 되고 옥천중·고 시절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고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꾸준함이었다. 이 군은 “부모 뒷바라지를 받는 친구들이 부러워질 때면 더 악착같이 책에 매달렸다”고.

가장 고마운 사람은 ‘아버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처럼 운명을 개척해 나간 그의 곁에 조력자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의 생활을 일일이 보살펴준 보육원 식구들은 가족과 같은 존재들이다. 여기에 중학교 1, 3학년 담임을 맡았던 우주현(여) 교사가 이 군에게 꿈을 심어줬고 세세한 부분까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 군은 우 교사가 담임을 했던 1, 3학년 때 각각 반장과 부반장을 맡기도 했다. 이 군은 “선생님께 꼭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어디에 근무하시는지 연락이 안된다”고 말했다. 

교습소를 운영하는 이선자 씨는 중학교 시절 무료로 방과 후 공부를 도와줬다. 이 씨는 이  군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학원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도록 알선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군에게 ‘가장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주저함 없이 나온 대답은 ‘아버지’였다. “2, 3년 전부터는 매달 한 두 번씩 보육원에 찾아오고 걱정해주시는 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군은 “서울대에 합격한 뒤 제일 먼저 전화를 드렸고 너무 기뻐하셨다”며 “하루빨리 아버지, 동생과 함께 다시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동급생인 동생 인용 군도 부산 동주대 물리치료학과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국제구호단체 제3세계 활동가가 꿈
이 군은 공부만 하는 책벌레가 아니었다. 중학교 학급 간부에 이어 고등학교 때에는 전교 학생회장 선거에도 나가 당선이 됐다.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치맛바람을 등에 업지 않은 이 군이 회장이 된 것은 리더십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이 군은 또 충북도 ‘인재상’을 받고 대한민국 ‘인재상’ 후보로 추천되는 영광도 누렸다.

그의 꿈 역시 진취적이다. 언론에 알려진 대로 장래희망이 외교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리더가 되기 위해 공직이든 NGO 활동이든 가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군은 “중학교 때만 하더라도 경찰이 꿈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싶었다. 빈곤은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뒤 UN 등에서 제3세계 빈곤이나 인권문제 등을 연구하고 싶다. 꼭 관료가 아니라 민간구호단체를 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군이 이 같은 꿈을 갖게 된 것은 구호단체인 월드비전 한국지부 긴급구호팀장으로 활동중인 여행가 한비야 씨의 영향이다. 한 씨의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것.

“제주도가 제일 멀리 가본 곳”이라는 이 군을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세계는 끝이 없다. 일단 “학비부터 벌어야 한다”는 이 군은 1월 초부터 옥천군청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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