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온 이노우에 교수가 말했습니다. 일본제국주의 대본영은 1894년 10월 27일 인천에 설치된 일본군 병참사령부에 전문으로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동학당에 대한 처치는 엄렬을 요한다. 향후 모조리 살육(殺戮)할 것" 무엇을 트집 잡아 사람을 마구 죽이는 것을 살육이라고 합니다. 끔찍하지요. 이렇게 제노사이드, 대학살(大虐殺)이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말 그대로 동학을 트집 잡아 마구 죽였습니다. 적게 잡아 3만, 많게는 5만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하니 얼마나 참혹한 전쟁입니까.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이노우에 교수는 말합니다. 살육명령 10일 전 일본공사의 요청으로 조선정부가 농민군 진압을 일본군에게 의뢰토록 하여 합법을 가장합니다. 이때, 조선정부의 의뢰를 보면 "흉류(농민군) 가운데 교화하기 어려운 자는 천백 중에 불과 한두 명뿐이므로 조선의 병관과 잘 상의하기 바라며, 옥석을 가려 처벌하기 바람"이라고 했지만 이런 당부는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고 동학군이라면 무조건 무차별적으로 마구 죽인 것입니다.

마구 죽인 것을 증명하는 문서가 바로 대본영의 살육명령인 것이지요. 제 나라 백성을 남의 나라 군대에게 잡아달라는 조선정부도 한심하지만, 그렇다고 죄 없는 남의 나라 양민들을 제 맘대로 무차별 학살한 일본 제국주의는 얼마나 악랄합니까. 허어~ 살이 떨리고 목이 메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일본의 지성 이노우에 교수는 말합니다. 당시 중국과의 싸움에서 조선반도의 불안, 즉 동학농민군이 봉기할 경우 일본에게는 결정적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특히 괴산과 충주 가흥 그리고 보은 등 북접 동학농민군의 위세가 강해 매우 우려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대본영이 동학군 포위섬멸작전 명령을 내린 시점은 일본군이 압록강을 건너 중국본토 공격을 개시한 사흘 뒤 입니다. 이것은 동학농민군의 봉기가 일어날 경우 일본에게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겠기에 긴급히(大至急), 선제적으로 섬멸작전을 한 것입니다.

요즘 말썽 많은 우리의 근현대사, 다시 써야 합니다. 일본제국주의 천인공노할 죄악상을 철저히 파헤치고 밝혀서 다시는 인류역사상 이런 만행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지요. 무엇보다도 우선 북접, 충북의 동학농민투쟁사를 재정립해야 되겠지요. 이노우에 교수가 조사 추적하여 폭로한 일본의 만행, 역사의 뒤안길에 숨겨진 사실, 일본이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숨기려 한 진실을 찾아내어 역사의 이름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충북의 정신을 다시 곧추 세우고 역사의 준엄함을 알도록 해야지요. 또한 제 나라 정부에 의해서 남의 나라 군대 손에 무참히 학살된 동학농민군과 그 후손들이 겪은 아픔을 치유하고, 그에 따른 정당한 배상과 보상이 따라야 합니다.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자고 일어선 백성들이 역도로 몰리고, 그 후손들은 한 세기가 넘도록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아직도 다 밝히지 못한 일제의 범죄행위가 그대로 묻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근현대사를 왜곡하고 일제식민통치가 조국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망언을 일삼는 자들이 백일하에 큰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21세기 오늘의 현실입니다. 관련 인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국의 범죄적 사실을 규명해 낸 이노우에 북해도대학 명예교수에게 존경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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