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에도 이웃돕기 성금 모금액 줄지 않아 ‘다행’
‘대학에는 내도 성금은 싫어’ 재경경제인 참여 저조

전세계가 경제난에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내년에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럴 때 일수록 남을 돕는 마음이 필요하다. 십시일반(十匙一飯). 열 사람이 밥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이다. 이 말처럼 요즘 절실한 말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지난 1일 청주 상당공원에서는 ‘희망 2009 나눔캠페인’ 행사가 있었다. 매년 사랑의 온도계를 세우고 충북도내 모금액을 표시한다.

그리고 시내 중심가에는 구세군 자선남비가 등장했다. 또 대표적인 봉사단체인 적십자사충북지사에서도 도민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매년 이맘 때 연례적으로 보아온 것이지만, 어느 때보다 춥고 외로운 올해는 달리 보인다. 본지는 기부문화를 확산하자는 의미에서 충북도내 모금운동의 실태를 취재했다.

▲ 충북공동모금회는 12월 1일 이웃돕기 성금 모금을 위해 ‘희망 2009 나눔캠페인’ 행사를 열었다.
사상유례없는 불경기가 불어닥쳤는데, 그럼 올해 이웃돕기 성금은 줄었을까, 늘었을까? 다행히 기관 모금은 줄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경제난 때문에 올해 모금액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온정이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충북도내의 대표적인 모금기관은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충북지회(회장 한장훈)와 적십자사충북지사(회장 김영회)다. 올 3월 창립된 충북인재양성재단(이사장 정우택)도 기부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기관이긴 하지만 성격은 약간 다르다.

충북공동모금회는 지난 98년 11월 13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창립됐다. 과거에는 정부주도 성금 모금 및 배분을 실시했으나 관주도 이웃돕기 성금모금과 배분과정에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 민간이전이 제기됐다. 이후 97년 사회복지공동모금법이 공포됐으며 이듬해 7월 발효됐다.

충북, 기업체 성금 저조
충북공동모금회 올해 목표 모금액은 48억원이다. 지난 2005년 최고치인 48억4600만원을 달성한 이래 2006년 43억7600만원, 지난해 41억2000만원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올해 목표액은 다소 높다.

한장훈 회장은 “행정기관과 시민사회단체, 복지시설의 협조아래 모금활동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기부문화의 저변확대다. 기업들이 500만원, 1000만원 정도씩 내는 성금은 줄었지만 시민들이 십시일반 내놓는 성금은 늘었다. 그래서 올해 전체 모금액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증가했다”고 말했다.

실제 충북은 다른 지역보다 개인 성금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국 총모금액을 분석한 결과 기업체 성금이 67%를 차지하고 개인 성금이 33%에 그친 반면 충북은 기업체 성금이 50.4%인데 반해 개인 성금은 49.6%나 된다. 박용훈 부장도 이에 대해 “어려운 사람, 일반 시민들이 기부를 많이 한다. 가슴 따뜻한 사연도 많다. 우리가 난치병어린이돕기 진료비 지원사업을 하는데 이 때 도움받은 한 시민이 아이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조의금과 헌혈증 200개를 기부했다. 이 시민은 지금도 계속 성금을 내놓고 있다. 그 외 아름다운 사연도 꽤 많다”고 밝혔다.

▲ 충북공동모금회가 주최한 기부자 초청 만찬. 이 행사에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기부해온 기업인과 개인들이 참석했다.
그런가하면 1949년 창립돼 59년 역사를 가진 적십자사충북지사의 2006년 모금액은 14억1500만원이었다. 이어 지난해에는 14억4100만원이 걷혔다. 올해는 이보다 약간 적은 14억3000만원. 적십자회비는 지난 2000년까지 행정기관 통·반장들이 걷었으나 2001년부터 자율화됐다. 이 때부터 회비 걷기가 어려워진 것. 이후 2005년까지 충북은 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해 본사인 대한적십자사로부터도 실적이 저조한 지자체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2006년부터 내리 3년 동안은 목표액을 달성하는 지자체로 이미지를 쇄신했다. 이 때문에 본사에서 충북에 대한 ‘대접’도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적십자회비는 강제성이 없는 세금이다. 1년에 시 지역은 가구당 5000원, 군 지역은 4000원이다. 내년에는 각각 1000원씩 인상된다. 이런 일반회비 외에 후원회비와 특별회비가 있다. 김영회 회장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한 재경 기업인, 지역의 기업인들 중 몇 명은 한 해에 몇 백만원부터 몇 천만원씩 내놓는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적십자사는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노란조끼 봉사자들과 대가없이 쾌척하는 기부자들이 있어 존재한다”고 말했다.

기쁜 일 있으면 성금 쾌척
정우택 충북지사는 매월 100만원씩 연 1200만원의 특별회비를 적십자사에 내놓는다. 다른 시·도지사들이 많아야 연 200~300만원 내놓는 것에 비하면 많은 액수다. 정 지사는 최근 지난 2006년 9월부터 어린이재단에 익명으로 월 500만원씩 모두 1억3000만원을 기부한 것이 밝혀져 화제가 됐다. 정 지사는 또 인재양성재단에 1000만원을 기탁, 기금 모금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김 회장은 “적십자회비는 도시보다 농촌, 잘사는 동네보다 어려운 동네 사람들이 더 잘 낸다. 1년에 한 번 커피 한 잔 값 정도 되는 것인데, 전체 도민의 절반 정도밖에 내지 않는다”며 “세상의 그 어떤 이념·사상도 적십자의 인도주의를 우선하는 것은 없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라고 하지만 아직도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불우한 이웃들이 많다. 이들을 돕는 것은 국민적 도리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도민이 내는 회비는 전액 도민들을 위해 쓴다. 간혹 적십자회비를 북한에 퍼준다고 오해하는 시민들이 있는데 이 돈은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에서 나온다. 우리는 이 돈을 북한에 전달하는 일만 할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3월 18일 창립한 충북인재양성재단은 11일 현재 146억여원의 기금을 모았다. 100억원씩 10년 동안 1000억원의 기금을 모아 충북의 인재양성에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 모금된 것을 보면 충북도 50억원, 도내 시·군 35억원, 문정·청풍장학회가 해산하면서 흡수된 돈 35억원, 기탁금 26억여원 등이다. 그러나 인재양성재단은 지자체 출자·출연기관으로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규제를 받아 드러내놓고 기금 모금을 홍보할 수 없다. 기부하고자 하는 사람이 기탁서를 내면 반드시 기부심사위원회에서 자유의사에 의한 것인지를 심사한 뒤 승인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돼있다. 국가나 지자체가 강압에 의한 모금을 못하도록 법적 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이 재단에는 그동안 농협충북지역본부가 10억원, (주)풀무원 9억원, 신한은행 3억원, 권광택 도의원 1억원, 도의원 31명 일동이 500만원을 기부했고 충북도 공무원들의 소소한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도 공무원들 중에는 이종배 행정부지사가 500만원, 이승훈 정무부지사 300만원, 실·국·원장 일동 1000만원, 투자유치팀 일동 1890만원, 과장급 일동 1560만원, 전산직모임 정우회 500만원, 안재헌 충북도립대학장이 100만원 등을 내놓았다.

도 공무원에게는 인재양성재단이 어느 정도 인식돼 상금을 탔거나 기쁜 일이 있으면 기부하는 문화가 있다.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신재식 행자부 파견공무원은 예산절감 인센티브 상금 450만원을 기탁하고, 지용옥 감사관은 출판기념회 수입금 150만원, 맹정호 도의회 사무관은 딸 행정고시 합격 기념 100만원, 유순관 건축문화과 직원은 상금 50만원을 내놓았다. 그리고 인재양성재단 업무를 맡고 있는 정책관리실 직원 일동은 100만원, 이병화 담당 사무관 120만원, 고명수 담당주사 60만원, 그 외 이용범 충북보건환경연구원 연구사는 120만원을 기탁했다. 다만 아쉽다면 이러한 기부가 좀더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는 것과 도내 시·군 공무원과 주민들에게 확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양, 1인당 기부액 1위
그럼 충북의 기부문화는 어느 수준까지 왔는가. 아직은 매우 미약하다. 충북공동모금회도 연말에 이뤄지는 도내 시·군순회모금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시·군을 돌면서 하는 이 모금활동에는 방송사가 중심에 서고 기초자치단체장을 비롯한 각 기관, 기업, 학교, 시민들이 동참한다. 단체장의 관심 여하에 따라 기부금을 얼마나 걷느냐 성패가 갈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재까지는 행정기관의 영향력이 크게 좌우한다.

참고로 인구가 3만2000여명에 불과한 단양군은 지난해 1억6900여만원을 모금했다. 1인당 5242원으로 도내 어떤 지자체 1인당 모금액보다 많았다. 이에 대해 한장훈 회장은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단양군민들이 가장 많은 성금을 낸 것은 단체장과 기관이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양군은 놀랍게도 전인구의 1/4이 자원봉사자들”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그래서 충북도 복지여성국에서는 시·군 순회모금에 협조하기 위한 일환으로 각 시·군과 도 실·국을 한 군데씩 연결해주는 방법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문화관광환경국은 옥천군, 공보관실은 제천시, 경제통상국은 청원군 순회모금에 적극 협조토록 해놓은 것이다. 이렇게 한 결과 모금액이 어느 정도 증가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박용훈 부장은 “아직까지는 공무원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모금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선진국처럼 자발적인 기부는 안되고 있다. 그래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기부문화의 필요성에 대해 교육하는 동시에 시민 스스로 기부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공동모금회 전국 모금액은 2674억여원이었다. 충북 모금액 41억여원은 이 중 1.5%에 불과하다. 그리고 적십자사충북지사에서 올해 모금한 14억여원의 성금도 대한적십자사 전체 모금액 431억여원의 3.4% 밖에 안된다. 이 수치를 보면 충북의 모금실적이 매우 저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북이 전국 3% 경제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부분이다. 적십자사충북지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가장 빨리 목표액을 채우는 대전·충남은 30억원, 경기도는 85억원을 모금한다. 더욱이 충북은 지난 2001~2005년에는 본사가 정해주는 목표액마저도 채우지 못했다.

"대학에는 몇 억원, 기부에는 인색"
성금 기부에 가장 인색한 사람들은 재경 기업인들 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모금기관인 충북공동모금회나 적십자사충북지사, 충북인재양성재단을 보더라도 재경 기업인 중 손에 꼽을 정도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기부한 흔적이 없다. 재경인사들의 구심체인 충북협회에서도 이런 역할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모 인사는 “서울에서 사업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사람에게 성금 모금에 협조해 달라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고 전화까지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 전화는 따돌리고 받지 않고 편지에 대한 답장도 없었다. 그랬던 사람이 며칠 후 지역 대학에 몇 억원의 발전기금을 내고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권력기관에서 자선바자회를 하면 기업인들이 봉투를 들고 줄을 서지만, 어려운 사람 돕는 기관에는 별로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모금기관에서는 정말 죽을 정도로 뛰어다녀 걷는 게 이 정도 수준”이라고 허탈하게 말했다.

▲ 성규순 씨(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는 매년 초 적십자사 충북지사에 경로당에서 걷은 성금을 기탁한다.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는 김영회 회장.
한장훈 충북공동모금회장은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언론사들이 미담을 많이 발굴해 보도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주변 곳곳에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선행을 베풀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고, 어린이들에게는 남을 돕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를 자주 교육시켜야 한다. 교육 만큼 좋은 것은 없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기부하는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면서 “기부는 쓰고 남은 것을 하는 게 아니고, 아껴서 남을 위해 내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몰래하는 선행이라 더 아름답다
평범한 사람들의 물밑 기부 '훈훈', 이름 공개되면 그만둔다 '협박'도

우리는 큰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게 종종 감동을 받는다. 그들은 한 푼 한 푼 아낀 돈으로 자신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기탁한다. 그것도 익명으로. 충북공동모금회에는 자신의 이름을 감춘 채 벌써 몇 년전부터 선행을 해오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어떤 기부자는 언론에 이름이 공개되면 그 때부터 기부를 그만두겠다고 협박아닌 협박을 하기도 한다.

충북공동모금회에는 지난 2001년부터 매년 3000만원씩 기부하는 사람, 2005년부터 매년 쌀을 100포씩 보내는 사람, 그리고 7년째 매월 장애인세대 22가구에 100만원씩 지원하는 모임도 있다. 또 서 모씨는 자녀들이 어릴 때 복지기관으로부터 교육비 받은 것을 잊지 못하고 지난 6월 저소득층 아이들의 학비에 보태달라며 1000만원을 기탁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지난 1일 ‘희망 2009 나눔 캠페인 출범식’ 때 제1호로 저소득층 가정의 난방비 200만원을 내놓았다.

그런가하면 대한적십자사충북지사에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미담들이 많다. 증평군 장동에 사는 성규순(70)씨는 경로당에서 걷은 성금과 자신이 내는 특별회비 10만원을 합쳐 매년 70만원씩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성씨는 매년 연초에 이런 선행을 하고 있다. 또 전병순 광복RPC 대표는 매년 몇 백만원의 성금을 내놓고 명절에는 쌀 수십 포대를 가져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이어 청주시내에서 학천탕과 학천건강랜드를 운영하는 ‘목욕업계의 대부’ 박학래 전 도의원은 지난해 1월 일가족 25명과 함께 적십자사를 방문, 후원회원에 가입하고 매월 상당액을 기부하고 있다. 이들은 재벌이 아니고 큰 기업가도 아니다. 그래서 이들의 선행이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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