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는 뇌가 없는 사람을 좋아했다. 뇌가 있는 인간, 즉 머리가 좋다거나 총명하다거나 그래서 권력을 가졌다거나 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유사(有史) 이래로 머리가 좋으면서 정의로운 사람보다는 머리가 나쁘면서 정의로운 사람이 많았다. 이때의 뇌(腦)라는 것은 일신의 명예와 부귀 또는 안락과 편안을 말하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일생은 부귀영화나 명예안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지만 정의롭게 살았고 진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를 추모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2008년 12월8일, 제13회 단재문화예술제전 개막식에는 '노브레인'이라는 그룹이 노래를 한다. '뇌가 없다'는 뜻의 노브레인은 반항적인 세 명의 가수가 펑크 양식의 노래를 하는 록그룹의 이름이다.

'청년폭도맹진가'는 이들의 대표작이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26위라는 이 노래의 가사 중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절절 끓는 젊은 피가 거꾸로 솟을 적에 / 푸르게 날이 선 칼끝에는 검광이 빛난다 / 그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세상을 뒤집어엎을 날을 / 그날 밤은 바로 오늘밤 영광 아니면 죽음뿐이다."

다소 풍자적이지만 이 가사는 단재가 썼다고 해도 믿을 만하다. 이처럼 노브레인은 이 시대의 저항 정신을 표현한, 그래서 단재의 사상과 맥이 상통하는 대중문화의 상징이므로 개막공연에 적합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또한 독립군가를 현대적으로 재현하고 민중가요를 이어받은 노브레인의 저항정신이야말로 청소년들에게 적합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자마자 단호하게 '안 된다'라는 반대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유는 보수를 표방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17대 대선 당시 홍보송을 제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뉘를 칼바람처럼 살았던 단재 관련 행사에 초청되는 노브레인이 보수적인 한나라당 후보의 홍보 노래를 했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설전에 설전이 이어졌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뇌가 없는 노브레인의 노래가 의미 있다'는 더욱 강력한 반론이 우세해졌다.

이유는 이렇다. 위인(偉人)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나이 든 장년층의 엄숙한 예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지루한 식사, 축사, 격려사, 참석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딱딱한 격식, 정치가나 명망가 중심의 진행 등이 그 전형적인 예다.

그런 격식 속에서 위인의 정신이 후대에 전해질 수는 없는 일이다. 후세대인 청소년들은 그런 행사를 한사코 기피한다. 그래서 택한 역발상이 바로, 청소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단재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자는 문화적 전략이었다.

억지로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단재의 정신을 학습하고 내면화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논의의 결과가 바로 노브레인이었다.

물론 유력한 정치가를 찬양하는 정치적인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이들이 과연 뇌가 있는 즉 의식이 있는 집단인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역시 반론이 제기되었다. 노브레인이 권영길 후보의 노래를 불렀다면 괜찮고 이명박 후보의 노래를 불렀다면 안 되는 것이냐, 그런 편벽이 단재의 정신이냐를 놓고 또다시 설전을 벌여야 했다.

마침내 2000년대의 단재는 포용력과 이해심과 관용을 갖춘 새로운 인물 단재 신채호여야 한다는 주장이 이겼다. 이래서 이명박 후보 찬양이라는 파고도 넘었다. 이렇게 노브레인은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니, 혹자가 보듯이 그저 재미로 대중가수를 초청한 것은 아니다. 이리하여 노브레인은 단재와 이명박 후보를 잇고, 과거와 현재의 가교를 놓았다. 이성우, 정민준, 황현성으로 구성된 노브레인을 막무가내로 무대에 세운 단재문화예술제전의 김성운, 이재표, 원종문 등 충북의 재사(才士)들 또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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