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통로‘橋梁’을 찾아서'1-교량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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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통로‘橋梁’을 찾아서'1-교량의 역사
  • 충청리뷰
  • 승인 2002.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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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橋梁)은 하천 계곡 또는 해협 등을 횡단하거나 도로를 연결할 때 그 통로를 위하여 축조된 구조물이다. 그러나 교량은 물리적 축조물로서 연결통로지만 그 의미는 가히 엄청나다. 작게 보아 교량은 지역간 인적·물적 교류의 통로다. 여기에 우리 조상들은 또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이데아의 통로를 다리(교량)로 그려냈다. 불국사의 청운·백운교는 부처님의 나라 佛國에 이르는 통로로 여겼다.
이러한 교량을 평생에 걸쳐 답사하고 연구하여 그 의미와 역사성을 다시 새롭게 부각시킨 ‘별난 사람’이 있다. 우리 지역에서 전국 최초의 건설 박물관을 연 손광섭씨(광진건설 대표)가 바로 그다. 손사장은 우리 나라 삼국시대의 교량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고대 교량은 물론 세계의 역사적인 교량을 직접 찾아 역사성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발굴하는 작업을 15년여 동안 해오고 있다.

이에 본보는 ‘교량의 사회 문화적 가캄탐구에 흠뻑 젖어있는 아마추어 교량연구가 손광섭씨의 열정을 통해 옛 선조들의 교량축조에 얼킨 애환과 사회상을 되 살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교량의 역사>
교량에 대하여 經註에서는 거마가 통행할수 있는 다리를 橋라하고, 사람이 많이 걸어다닐수 있는 다리를 粱이라 하였다. 인류 초기의 교량은 유랑인 들이 이동하는 도중에 계곡 건너편으로 이동하거나 건너편의 동물들을 잡으려고 계곡에 넘어져 있는 통나무를 이용하는 등의 단순 형태의 다리에서 점차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여 수레나 마차의 통과가 필요하게 되었다.
문헌으로 보면 진보된 기술과 형식을 갖춘 다리로는 3국 시대부터 건설된 것으로 유추되며 현재에 남아있는 옛 교량은 단순히 물을 건너기 위한 기능적인 요소외에 조상들의 정신적인 의미를 가진 설화와 전설이 깃들인 교량들이 있다. 기록에 남아있는 최초의 교량 공사는 413년 완성한 平壤州大橋로 그 위치는 미상이나 그 당시로서는 대대적인 공사로 진행된 듯 하다.
삼국유사에 보면 설화나 전설이 남아있는 교량 중 경주를 중심으로 원효와 요석공주에 대한 유교(楡橋), 진평왕의 명에 의하여 귀중(鬼衆)을 불러서 한 밤 중에 건설하였다는 귀교(鬼橋), 현존하는 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경주 불국사 청운·백운교와 蓮花·七寶橋가 있다. 청운·백운교는 부처님의 나라 佛國에 이르는 통로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고려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교량으로는 고려 말엽에 충신 정몽주 선생이 이성계 일파에게 피살되어 殉死한 곳으로 잘 알려진 선죽교 다리가 있는데 다리 동쪽에 한석봉 글씨의 碑가 있다.
조선시대 창건한 교량으로서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경복궁내의 목교는 1867년 고종이 건천궁 남쪽에 못을 파고 중앙에 섬을 만들어 향정을 짓고 나무로 운교를 걸어 취향교(醉香橋)라 불리는 다리가 있고, 창덕궁내의 금천교는 1411년 경에 창건한 돌다리로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다리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서울 중심부에는 청계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 내를 건너기 위하여 수표교, 5간수교, 광교등이 있었다. 수표교는 다리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서울 성내의 하천을 흐르는 수량을 측정하는 기능까지 겸비한 과학적인 기능을 지닌 화강석으로 만든 교량이다.
이 교량은 세종 23년에 교량옆에 수펴(水標)를 설치한 뒤부터 수표교로 불려진다.

성종 14년에 완성된 서울 중랑천 하류의 한양대학교 옆에 있는 돌다리는 살곶이 옆에 있다하여 살곶이 다리로도 불린다. 이 다리는 조선시대다리로는 최장의 교량으로 한양과 동남지방을 연결하는 주요한 통로로 17기 84주의 폭 6미터 총길이 75.75미터이다.
현대에 있어 교량은 인간 공동체의 생명선의 의미를 갖게 되었고 그 중요성은 더욱 더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교량은 사람과 차의 통행뿐만 아니라 상하수도관, 각종 케이블의 통과 및 문화의 교류 등 인류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역할을 하여 인류의 역사와 같이 할 것이다.
이러한 설화와 전설이 담겨있는 다리를 찾아 ‘橋梁 流轉’을 떠나보고자 한다.


1.‘孝不孝橋’
사랑에 빠진 어머니 위한 다리, 아버지엔 불효
효의 아픔 담은 유사 전설 곳곳에

신라 고도 경주 인왕동. 경주 박물관 서쪽 남천변에 ‘孝不孝橋’(효불효교)의 석재들이 남아 아련히 신라적 전설을 전하고 있다. 옛날 이 다리의 서쪽에 홀어머니와 일곱 형제가 함께 살았다. 어렵게 고생하며 일곱 아들을 키운 홀어머니는 만년에 강 건너에 사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장성한 아들들이 잠든 저녁에 만났다가 새벽에 다시 내(川)를 건너 헤어지곤 하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만남은 계속됐다. 드디어 아들들은 눈치를 채게되어 형제들이 의논을 하게 되었다. 혼자몸으로 우리 일곱 형제들을 키워주신 어머니인데 우리들 몰래 밤마다 물을 건너자니 얼마나 고생이 되시겠느냐고 생각한 아들들은 합심해서 다리를 놓아드리고자 하였고 하룻밤새 돌을 다듬고 모아 다리를 완성했다.
그러나 다리를 만들어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드렸으니 분명히 효도이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아내의 또다른 사랑을 도와주는 일이라 불효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세상 사람들은 그래서 이 다리를 효불효교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일곱 형제가 만들었다 하여 七星橋라고도 하며 이때의 칠성은 인간의 생명을 주는 소위 북두칠성의 신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며 민간에서는 이 다리가 아이없는 어머니들이 기원하는 다리로써 존숭하기도 한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 35호로 보존되고 있다. 얼음장 같은 내를 건너는 어머니에 대한 안스러움과 한편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불효 사이에서 고민하며 기우는 달빛아래 돌을 다듬고 모았을 일곱형제의 침묵을 안은 채 석재들만 딩굴고 있다.

-손광섭 청주건설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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