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동체·장소성·선한 의도 세 가지 코드를 읽어라
‘행동하는 문화’ 프로젝트, 커뮤니티 아트의 모범사례

‘미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명제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특정 계층을 위한 전유물이었던 액자 안에 갇힌 예술이 세상과 소통한다는 것은 사실 천년만년 불가능해보였다. 그런데 최근 공공미술이 권위적인 미술세계에서 뛰쳐나와 세상과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건물 앞에 작품을 전시하듯 세워놓으면 끝이 났던 공공미술이 이제는 현장으로, 사람들 안으로 파고들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가들은 버려진 공간을 커뮤니티(지역공동체·community)와 함께 가꾸고, 예술이 지역민의 삶에 녹아드는 과정을 중시한다. 이러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새장르 공공미술’로 불리며 현대미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6일부터 11월 2일까지 시카고 공공미술 프로젝트 현장을 돌아보고 공공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한다. 또한 우리지역의 공공미술 이야기를 <세상을 변화시키는 미술> 주제아래 차례차례 꺼내보고자 한다.

액자에서 뛰쳐나온 예술의 미래

▲ 메리 제인 제이콥은 시카고 공공미술에서 반드시 거론돼야 할 인물이다. 1993년 '행동하는 문화’프로젝트로 세상에 놀라게 했고, ‘행동하는 문화’은 새장르 공공미술의 모범사례이자 전설이 됐다.
이른바 새장르 공공미술 시대를 연 이는 미국 시카고 미술대학(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의 교수이자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메리 제인 제이콥(Mary Jane Jacob)이다. 그는 시카고 공공미술에서 반드시 거론돼야 할 인물이다. 지난달 30일 그를 시카고 설리번갤러리에서 만났다.

메리 제인 제이콥은 1993년 '행동하는 문화(Culture in Action)’프로젝트로 세상에 놀라게 했고, ‘행동하는 문화’은 새장르 공공미술의 모범사례이자 전설이 됐다. 현재 새장르 공공미술은 커뮤니티 아트, 퍼블릭 아트, 아웃사이더 아트 등 다양한 줄기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메리제인 제이콥은 이것이 커뮤니티 아트(지역공동체와 연결된 예술·community art)의 시작이 아니라고 말한다. “1970년대로 돌아갈 수도 있고, 또 커뮤니티와 예술이 합쳐져서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1930년대로 돌아갈 수 있어요. 1920년대에 미술은 박물관 액자에 들어가 있었어요. 아니 그 이전부터 박물관 전시장에 물건처럼 들어앉아 있었어요.‘행동하는 문화’프로젝트는 예술이 사람들의 삶 속에 파고드는 것에 집중했어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필요성을 고민했던 것이죠. 크게 보자면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시작될 때부터 커뮤니티 아트는 시작됐어요.” ‘행동하는 문화’는 커뮤니티의 삶과 문화와 장소에 관여했다는 점이 포인트다.

수학공식처럼 소통방식 적용 못해
이 프로젝트는 2년 동안 진행되며 시카고 안과 밖에서 다양한 변화를 낳았다. 이미 자발적으로 커뮤니티 아트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자긍심을 갖게 했고, 커뮤니티 아트 일을 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영감을 주었다.

또한 ‘행동하는 문화’ 프로젝트 사례를 기술한 책을 보고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새로운 소통방식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아트의 소통법은 무궁무진해요. 다만 커뮤니티 공공예술을 논할 때 ‘의도’가 중요한데 단기적 작품인지, 장기적 작품인지,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는 것인지 등 기획자의 의도가 커뮤니티 아트로 결정되는 중요한 요소이죠. 또 커뮤니티 아트에 관한 책을 보고 다른 나라에서 벤치마킹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좋은 방법은 아니예요. 각 커뮤니티마다 속성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수학 공식같이 적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작가와 전문가, 시민들이 모여 있을 때 그들의 뭉쳐있는 관계를 예술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메리제인 제이콥은 ‘행동하는 문화’프로젝트 이후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고백한다. 동양의 철학인 무상(無常)에서 이러한 물음에 해답을 얻었다는 것. 기대감 없이 열린 마음으로 커뮤니티와 작업하는 데는 수행의 정신이 필요했다는 반증이다. 메리제인 제이콥은 2000년대 들어 불교와 미국 미술의 연관성을 탐색하는 기획을 벌이기도 한다.

커뮤니티 아트를 두고 더 이상 시카고에선 이것이 예술이나 아니냐는 논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들이 읽고 쓰기를 더 잘하면 아트프로젝트가 아닌 글 읽기 프로젝트이고, 또 주전자로 차를 끓일 수 있으면 공예품이고 차를 만들지 않고 아름답다면 예술품이라는 논리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닌 온전한 커뮤니티 과정이예요. 관계에 기초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곧 작품이죠. 결과물은 부수적인 문제일 뿐이에요.”

그는 최근에 가장 인상적인 작업으로 자신의 졸업생이 벌인 ‘트럭 프로젝트’를 손꼽았다. “6개월 전 쯤 우정하라는 한국 학생이 트럭을 몰고 마을로 찾아갔어요. 졸업 후 스튜디오도 없고 돈도 없는데 커뮤니티로 트럭을 갖고 들어가 소형 극장처럼, 때로는 밥차처럼 활용해 커뮤니티와 대화를 이끌어냈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에 대한 장소성을 새롭게 발견한 셈이죠.”

장소성은 더 이상 물리학적인 공간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작품이 들어가는 맥락을 이야기한다. 메리제인 제이콥은 장소성이란 여러 가지 생각하게 만드는 동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문화, 참여자들의 교육적 수준 등이 포괄적인 장소성으로 읽혀져야 한다는 것. 삶이 녹아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은 바로 커뮤니티에 있었다. 

'행동하는 문화'는 어떤 프로젝트인가
작가와 커뮤니티 8개 그룹으로 나눠 2년간 진행

'행동하는 문화'(Culture in Action)는 메리 제인 제이콥이 비영리 공공미술 기관인 '스컵처 시카고'(Scluptuer Chicago)의 지원을 받아 1991년 시카고 전역에서 시작해 1993년 일반에 공개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였다. 2년여간 한시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지만 '행동하는 문화'는 이후 미국 공공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새로운 흐름에서 늘 거론되는 사건 중에 하나다.

그는 2년간 진행된 프로젝트에서 고등학생, 공동주택 거주자, 에이즈 환자, 여성단체 등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와 작가들이 8개의 그룹을 만들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공동주택 거주자들의 프로젝트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삶을 반영하는 페인트 색상표를 정해 전국 건축자재상에 배포했고, 노동조합원 공동체에서는 작가와 노동자들이 막대사탕을 만들고 포장지를 디자인했다.
또 시내의 광고판에 상품을 광고하는 일을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이밖에 12명의 고등학생들이 1년여 동안 도시생태환경 보존을 위한 현장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일부 작가들은 에이즈 환자들과 함께 환자들이 먹을 채소를 수경재배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도심 빈민가 청소년들로 자신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비디오를 제작해 지역의 거리에 모니터를 설치해 발표하는 프로젝트도 있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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