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에게 장기 기증하고 떠난 故 김상헌 군 아버지 김찬우 씨
“4대 독자 종손 귀한 자식…더 이상 학교폭력 피해자 없어야”

▲ 故 김상헌 군의 부모는 16일 열린 노제에서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도, 아름답게 보내는 것도 모두 부모의 책임이라며 다시는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울먹였다. /사진 육성준 기자

“우리 아이가 뇌사 판정을 받았어도 기적이 일어나기만 바랐어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가망이 없다고 했죠. 우리 아이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 최선의 선택을 고민했고, 마지막 가는 길 세상의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결정을 내렸어요.” 14일 청주의료원 빈소에서 만난 故 김상헌 군의 아버지 김찬우 씨가 어렵게 말을 이었다. “태어나서 고마웠고 이제 영영 곁을 떠났지만 마지막으로 훌륭한 일을 하게 됐다”며 그는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故 김상헌 군(14·송절중 2학년)은 지난 6일 같은 학교 같은 반 급우의 폭행으로 급소를 맞아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빈소가 차려진 14일 오전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12시간에 걸친 장기적출수술을 받았고 콩파ㅏ, 각막, 간 등을 9명의 환자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숨 쉬고 있는데, 심장이 아직 뛰고 있는 데 호흡기를 떼고 죽음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마 낙하산이 하늘에서 떨어질 확률일거예요. 만분의 일, 천분의 일 확률일 텐데 나한테 닥치고 보니까 내 일이고 우리 가족의 슬픔이고 또 현실이예요.” 그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도, 아름답게 보내는 것도 모두 부모의 책임이라고 했다.

故 김상헌 군은 4대 독자였다. 게다가 경주 김씨 계림공파 종손이었다. 아버지는 “착하고, 성실하고, 인기도 좋고 키도 훤칠한 참 사랑스러운 아이였다”고 되뇌인다.

이날 빈소엔 교복을 입고 온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상헌이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한 여학생은 “상헌이랑 1학년 때부터 친했어요. 처음엔 믿기지가 않았는데, 이렇게 교실이 아닌 장례식장에서 보니까 맘이 너무 아프고 미안해요.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던 참 착한아이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심장 뛰는 데 죽음 인정 쉽지 않아"
중학교 2학년, 14살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된 상헌 군. 그는 가수를 꿈꾸며, 축제 땐 원더걸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춰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던 평범한 아이였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 6일 학교가 파한 후 오후 4시 30분께 인근 아파트 공터에서였다. N군(봉명중)이 전화상으로 하루 전날 P군(송절중)과 다툰 후 N군의 친구 Y에게 손을 봐줄 것을 부탁했다. 평소 P군과 친했던 상헌 군은 친구가 위험에 처할까봐 Y를 만나러 함께 동행했다. Y군은 친구를 도와주러 온 상헌 군의 목 뒤 급소를 가격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졌다. 이날 싸움은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두 번 자리를 옮겼고, 학원에 가던 아이들 9명이 우연히 이를 지켜봤다.

상헌 군이 쓰러지자 몇몇 아이들은 물을 사러 가 얼굴에 뿌리고, 인공호흡을 하다가 반응이 없자 112에 신고했다. 충대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이미 상헌 군은 뇌사상태였고, 10일 새벽 중앙아산병원으로 옮겼지만 차도가 없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아버지가 이 소식을 접한 것은 송절중학교 운동장에서였다. 불과 몇 분 거리에서 생사를 달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 아버지는 학교관련 문제 때문에 바쁜 일정을 보냈다. 오전에는 YWCA에서 주최한 <봉명동 폭력 없는 마을 만들기>네트워크 모임에 참여해 회의를 했고, 오후엔 학교에서 교복공동구매 관련 회의를 했다. 송절중 학교운영위원장이기도 한 아버지 김 씨는 평소 학교 폭력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사회가 움직여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활동해왔던 터라 이번 사건은 더욱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명예졸업장 받을 때까지 학운위 계속"
김미경 YWCA여성상담소장은 “네트워크가 6개월 전에만 구성됐더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이 인다. 결국 학교폭력문제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데 방과 후 오후시간에 이처럼 사건사고가 일어나도 아무런 대비책이 없는 실정이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오는 19일 봉명동에서 대대적인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었다고.

또한 학교당국에서는 사건사고가 일어난 사후에 지역민과 학교 관계자로 구성된 폭력대책위원회가 꾸려지지만 징계여부만을 논의할 뿐이다. 우리사회는 지금 학교 폭력에 대한 아무런 대비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김 씨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다보니 학생들이 비뚤어져도 아무런 제재조치도 가하지 못해요. 부모도 선생님도 학생을 이기지 못하는 형국이잖아요. 미디어 매체를 통해 아이들은 폭력적인 장면과 행동에 그대로 노출돼 있고요. 운영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고, 줄이고자 노력했는데…이번 사건이 우리 아이만의 일로 끝나면 좋겠어요. 결국 제대로 못 돌본 건 다 부모책임이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운영위원장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학교를 마치는 기간까지만요. 이승에서 받지 못한 명예 졸업장도 주고 싶고요.”

‘하늘나라에선 아름다운 별이 되렴’
16일 노제, 학생·교사 참석 마지막 길 배웅

16일 발인을 마친 후 오전 9시 학교 교정에서 재학생·학부모·교사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제가 열렸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듯 교정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덮였다. 김 군의 아버지와 가족들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고, 교사들과 학생들이 모인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다. 14살인 상헌 군을 추모하기위해 14명의 학생들이 꽃을 들고 헌사했다. 이렇게 30분간 정들었던 교실과 운동장에서 상헌 군은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고별사를 낭독한 학생대표 구모 군은 “널 돌보지 못한 것, 우리만 이렇게 숨 쉬고 살아있는 것, 모두 미안하다.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거친 폭력과 날카로운 말 대신 부드러운 인사를 할께.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별이 되길 빈다”고 명복을 빌었다.

김 군의 1학년 담임교사는 "상헌아, 너의 모습을 지우지 못하고 가슴에 묻는다. 가슴에 묻고 평생을 살려한다. 날개를 달아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라고 울먹였다.

노제를 마친 뒤 김 군의 영정은 2학년4반 교실 맨 왼쪽 줄 두 번째에 놓여졌다. 김 군이 열흘 전까지만 해도 앉아서 수업을 받던 곳이다. 교실 뒷벽의 패널엔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하라’고 쓰여진 김 군의 ‘내가 좋아하는 명언’만이 남아있었다. 김 군은 이날 청주 목련공원에서 화장절차를 거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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