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와 자전거 시클로가 거리에 넘쳐나는 베트남의 호치민시(옛 사이공). 쇄신정책인 도이모이 정책이후 과거를 딛고 발돋움하려는 베트남은 근면함과 민족적 자부심을 자양분으로 활력에 냇惻 14일 오후 8시 35분께 베트남 호치민시(옛 사이공)를 향해 인천신공항을 이륙한 아시아나 항공기는 다섯 시간을 날아 현지시각 밤 11시 30분 탄손누트 공항에 내려앉았다. 시차 때문에 2시간이 절약된 셈이었다. 늦은 밤 호치민시의 사위는 깜깜했지만 한밤에도 온 몸을 감싸는 후끈한 열기가 상하의 나라에 도착했음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기자의 베트남 기행은 LG생활건강과 LG화학이 베트남 현지 공장 시찰명분으로 출입기자들을 초청함으로써 이뤄지게 됐다.
어쨌거나 끔찍한 9·11 미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이후 21세기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시작됐느니 대테러 응징이니, 공습,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쟁개시, 항전불사, 기아, 탄저(anthrax) 바이러스 살포 관련 뉴스 등등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반평화 언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비행기에 오른 기자는 여행자의 가벼운 설렘보다는 무거운 상념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과 싸워 이긴 나라
더구나 기자가 찾아가는 나라는 2차 세계대전이후 최대의 전쟁이 일어난 베트남이었다. 현재 화폐가치로 미국이 3500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부은 어이없는 전쟁,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화력보다 400배나 많은 포탄이 사용된 처참한 전쟁이 월남전이었다.
‘지금 대테러 전쟁을 펼친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엄청난 ‘완력’을 사용하고 있는 미국이 남의 땅에서 주연으로 나섰던 이상한 전쟁이 월남전쟁 아니었던가. 게다가 초강대국 미국이 2차 대전이후 처음으로 승리를 기록하지 못한 전쟁이 한국전이라면 최초로 패배한 전쟁은 바로 월남전 아닌가. 나아가 우리도 미국의 용병(用兵)으로 젊은이의 피를 인도차이나 반도에 뿌려야 했던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고...대신 우리는 파병대가로 미국의 원조를 받아 경부고속도로를 닦고, KAL의 모태가 된 한진해운 등 여러 기업들은 월남전을 무대로 비약적 성장을 하지 않았는가. 남의 비극을 통해 기회를 잡은 우리. 그래서 우리와는 더욱 기구한 관계일 수 밖에 없는 베트남은 정작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해 베트남은 역사의 빚을 진 한국에 대해 이미 대범하게 용서하고 있었다. 과거를 잊지는 않았어도, 그것(한국의 월남참전)은 한국의 자의에 따르지 않은 결정이었던 데다 용병 아니었느냐고 오히려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짧은 기간 베트남을 직접 본 느낌은 분명 이랬다.




호치민시내 관광에 나섰다가 거리에서 조우하게 된 한국의 모 대형할인점 셔틀버스. 관광버스안에서 급히 찍었어도 글자가 선명하다. 베트남에는 택시는 물론 버스 트럭 중장비의 거의 대부분을
잊지않되 용서하는 아량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베트남에서 불고있는 한류(韓流)열풍은 이해될 수 없다. IMF이후 다소 빛이 바랬지만 여전히 한국의 발전상을 모델삼아 새마을운동을 수입해 실천하고 있는 그들에게서 중국인과 비슷한 실사구시적 사고방식을 느꼈다. 호치민시 곳곳에 LG화장품의 광고모델로 얼굴이 수없이 나붙어 있는 김남주는 이 나라 최고의 국민여배우로 자리잡았고, 현지의 잡지 모델로 등장한 장동건과 안재욱도 한국바람의 원류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그들에게 우상의 나라인 것이다.
또 통일전 이름인 사이공을 여전히 써도 별탈이 없는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교조적이며 권력까지 세습하는 경직된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와는 확연히 다른 유연한 모습이었다. 하긴 공식인구가 8000만명에 달하는 베트남의 평균소득이 300달러인데 반해 800만 인구의 호치민시 평균소득은 1200달러에 달하니 그들의 그런 융통성이 이해됐다. 더구나 그들은 일찍이 자본주의를 경험했고, 당시에는 우리보다 윤택하지 않았던가.

한국 중고차들의 천국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베트남은 숱한 외세의 침략을 겪은 우리처럼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근대에만 프랑스에 100년간이나 식민지배를 받고, 독립해서는 우리처럼 남북으로 갈려 미국과 싸우고 통일이후에는 같은 공산국가인 중국과도 싸우는 등 영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때 식민지배를 받았을 지 모르지만 결국 세계열강들과 싸워 모두 이긴 위대한 민족이었다. 기자가 베트남 국민에게 진한 동질성을 느낀 것은 바로 이런 그들의 역사 때문이었다.
호치민시에서의 가장 흥미로운 관찰은 자동차가 거의 한국산 중고차였다는 점이다. 택시의 경우 프라이드베타 씨에로 마티즈가 주종을 이뤘고, 중장비나 버스 트럭 역시 현대 대우 쌍용차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호치민시 전체가 한국차들의 거대한 전시장같았다. 이런 가운데 특히 재미있는 것은 ‘E마트 가양점’이나 ‘대우중공업’ 등 한글자막을 그대로 둔 채 운행하는 차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지가이드는 “여기에서는 한국제를 최고의 제품으로 여기는 까닭에 한글표시를 절대 떼거나 훼손하지 않는다. 아마 한글이 한국보다 대접받는 나라가 베트남일 것”이라며 “한국에서 셔틀버스 운행이 정지된 이후 많은 버스들이 넘어왔는데 E마트 청주점 버스도 봤다”고 말했다.

근면한 매력적인 나라
1986년 사회주의 노선을 사실상 포기하면서 대신 ‘도이모이’-쇄신(刷新)이란 뜻-정책을 도입하면서 베트남은 연 두자릿수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로인해 한국과의 교역도 매년 급신장하며 베트남의 주요 수입대상국으로 한국이 부상하고 있는데, 지난해 우리나라가 거둔 130억달러의 무역흑자중 13억달러가 베트남과의 교역에서 거둔 것이다. 공해가 많은 낡은 중고차까지도 알뜰하게 사주는 베트남에게 우리는 현대사에 들어 계속 빚만 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우리처럼(?) 돈이면 안되는 게 없는 부패한 나라. 하지만 시험에서는 부정을 절대 하지 않고 개인경력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국민성. 프랑스 미국 중국과 싸워 이겼다는 민족적 자긍심만은 결코 저버리지 않는 근면한 나라. 베트남은 다시 찾고 싶은 매력적인 나라였다.
/임철의기자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