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국 청주지방법원 판사

“고향이 어디세요?” 교회에서건 다른 모임에서건 요즘 내가 자주 듣는 질문이다. 아마도 자연스럽게 섞여버린 충청도 사투리 때문인가 보다.

충북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은 대학시절 여름봉사활동이었다. 당시 진천군의 어느 마을에서 여름이면 봉사활동을 했었다. 기억에 제일 남는 것은 닭장에서 닭똥을 치우는 일이었다.

그 냄새가 어찌나 심한지 봉사활동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가면 바로 옷을 빨아 빨랫줄에 널고는 목욕부터 해야만 했다. 그래도 냄새가 가시지 않아 여학생들은 아예 숙소에도 못 들어오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숙소 밖 평상에 모기장을 쳐놓고 자야만 했다.

그리고는 충북 지역에 다시 머무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2000년 2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처음 부임하게 된 곳이 다름 아닌 청주였다. 처음엔 너무 낯설었다. 화려한 서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썰렁한 느낌마저 들었다. 처와 나 밖에 없는 빈 공간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쉽게 알기도 어려웠다.

이런 답답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을 더욱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또 청주크리스천남성합창단, 청주지방법원 합창단에 가입하여 성악과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 노래 속에 싹튼 우정이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낯설던 사람들이 너무 가깝게 다가왔고, 많은 분들이 날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기 시작했다. 청주에서 3년을 근무하고 다시 서울로 전출해야 할 때, 나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 남을 것인가? 서울로 갈 것인가?”

고향도 아니면서 지역법관을 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정들어버린 직원분들, 교인들, 합창단원들을 두고 서울로 떠나기도 싫었다.
그래서 그냥 1년만 더 머무르기로 했다. 그리고 1년 더, 그렇게 청주에서 근무한지 5년째가 되자 결심을 해야만 했다.

충주로 전근가면서 지역법관을 신청했다. 내 마음 속에 어느덧 충북은 고향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느리지만 깊은 정이 느껴지는 충북에서 나의 젊음을 보내고 싶었다. 이미 나의 세 아이의 고향 또한 충북이 아닌가.
9년의 시간 동안 충북에서 크고 작은 사건의 굴곡들을 흘려보내면서 난 늘 기도한다. 나의 사건 처리 속에서 당사자들의 억울한 사정이 잘 해결되고 사건이 원만하게 처리되기를.

그래서 이 지역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애정이 없다면 지혜도 없는 것이다. 지식만으로는 참다운 재판을 할 수 없다. 그들의 삶을 사랑하고 이해할 때만이 진정한 재판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지역의 공기를 마시고, 여기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여기에서 사랑을 노래할 것이다. 무심천의 물줄기가 나에게 인내와 너그러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충주호의 잔잔함이 나에게 안식과 평화를 줄 것이다. 나는 정말 사랑한다. 청풍명월과 이곳에서 정감 있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들을. 그래서 나는 행복한 지역법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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