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IMF때보다 어렵다고 한다. 경제만이 아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바닥난 서민들의 곳간은 우리네 심성마저 황량하게 만들었다. 잇딴 자살도 그렇거니와 부녀자와 아동을 납치하고 나아가 자식과 부모까지 죽이는 카드빚의 범죄 양상은 이 세상이 끝간 데까지 간 것 아닌가 하는 절망감마저 안겨 준다.

더구나 카드빚-사실은 빈곤의 문제이고 나아가 실업문제와도 연관돼 있다-이 잉태한 신용불량자의 구조적 양산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암초로 부상한 지 오래다.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지만 우리 경제의 두 버팀목은 수출과 내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내수가 엉망이다. 기업의 투자심리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의 소비심리 역시 밑바닥을 기고 있다. 기업, 가정과 더불어 3대 경제주체인 정부만이 재정팽창을 통해 사그라 드는 경제의 불씨를 되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런 대증 요법이 얼마나 효과를 낼 지 의문이다.

사실 카드빚의 양산과 이로 인한 개인 경제주체들의 무더기 신용불량자 발생은 DJ정부가 남긴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정부는 침체된 경제를 되살린다며 섣불리 시장에 개입, 내수 진작책을 구사했다. 그런데 그 정책이라는 게 국민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 스스로 지갑을 열도록 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신용, 즉 자신이 앞으로 갚아야 할 미래의 부채를 앞당겨 쓰도록 하는 하지책(下之策)이었다.

여기에 카드회사들은 한 술 더 뜨고 나섰다. 경제능력의 유무와 나이에 상관없이 수입이 없는 대학생과 10대 후반의 어린 청소년에까지 카드를 남발하며 잇속만 챙기려 한 것이다. 길거리에서 버젓이 카드발급에 나선 게 우리나라의 카드사였고, 정부는 이를 질끈 눈 감아버렸다.

이것이 지금 돌이킬 수 없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벼가 빨리 자라지 않자 조바심이 난 농부가 벼포기를 억지로 들어올렸다가 이내 말라 죽게 했다는, ‘조장(助長)’의 고사와 어찌 이리도 닮은 꼴인지 놀랍기까지 하다. 물론 신용카드를 분별없이 사용한 개인들에게도 책임이 없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선 자승자박의 결과라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을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것은 결국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는 생각이다. 어설픈 정책과 기업들의 비윤리적 장삿속이 결국 아둔한 개인들을 덫에 빠뜨린 셈이 됐기 때문이다.

“백성은 항산(恒産;직업 등 경제적 기반)이 없으면 항심을 잃게 됩니다. 항심이 없으면 방벽과 사치를 못할 게 없게 됩니다. 이렇게 백성을 죄에 빠지게 한 뒤 이를 형벌로 다스리는 건 백성을 그물질로 잡는 것(罔民)과 같습니다. 어진 임금이 어찌 ‘망민’을 하겠습니까?” 임금(국가)의 도리를 묻는 양혜왕에게 한 맹자의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국민을 옥죄는 포박의 그물망이 아니라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담보할 ‘사회 안전망’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튼튼한 사회 안전망을 엮기 위해서라도 제1의적 과제로 경제를 살려야만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예나 이제나 정치의 요체는 경세제민(경제)에 있다는 만고의 이치를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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