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문화와 남존여비사상 바뀌지 않는 한 악순환 되풀이 될 것”
한국남자와 결혼한 일부 외국여성들이 가정폭력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집을 뛰쳐나온 외국여성들의 사례가 청주지역 여성단체에 접수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들은 중국, 필리핀, 일본 등지에서 온 여성들로 한국남성들의 남존여비 사상과 가부장적인 문화속에서 몇 년 동안 ‘매맞는 아내’로 살다 여성단체 상담실을 찾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사례는 각각 다르지만 폭력과 경제적인 궁핍, 인간적인 무시를 당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띠고 있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꿈’

이영옥(32·가명)씨는 조선족이다. 중국 흑룡강성 출신으로 아버지대부터 중국에 살았다. 한국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던 이씨는 지난 98년 1월 충북 음성출신의 남자를 친척으로부터 소개받고 교제를 시작했다. 그해 7월 혼인신고를 하고, 다음 해 12월 결혼식을 올린 뒤 99년 1월 한국에 올 정도로 두 사람의 결혼은 급속도로 진행됐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생활은 ‘꿈’이었다. 결혼초기부터 매를 맞고 언어폭력에 시달리며 사람대우를 받지 못하는 생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남편이 집과 밭이 있고, 사는 것도 괜찮은 편이라고 말해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빚이 많았다. 그래도 3년동안 수박농사를 열심히 지어 1년에 3000만원 가량의 수입을 올렸다”는 이씨는 “농사짓는게 재미있어서 꾀 부리지 않고 일을 했으나 시어머니와 남편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모두 내 탓이라며 구박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마늘까던 그릇을 둘러엎고, 말 한마디만 하면 “말대꾸 한다”며 폭력을 행사하고, “네가 해온게 뭐가 있느냐”며 혼수 해오지 않은 것을 불평했다는 시어머니와 남편. 그중 이씨를 가장 슬프게 했던 것은 “너는 중국에서 사온 수입품이다” “너는 방안에서 잘 자격도 없으니 나가서 자라”는 말이었다는 것. 눈만 뜨면 밭에 나가 소처럼 일을 해도 점심은 언제나 굶어야 했고, 수박농사를 혼자 하다시피 해서 수입을 올렸어도 용돈으로 1년에 2만원 이상을 주지 않았으며, 기름값 아낀다고 보일러를 틀지 않아 찬 방에서 덜덜 떨며 지냈다는 것이 이씨가 들려주는 고생담이다.
더욱이 가족들은 이씨에게 아이를 낳지 못한다며 심한 구박과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검사결과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계속해서 이씨의 말이다. “한국말이 서툴러 무엇을 물어보거나 의견을 말하면 남편과 시어머니는 말대꾸한다고 극도로 싫어했다.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일만 하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나한테 두 번씩이나 제초제를 먹이려고 했을 만큼 나쁜 사람이었다.”
금년 1월 이씨의 탈출은 성공했다. 나오기 전날, 남편은 이씨를 칼로 찌르며 학대했다. 그래서 중요한 것만 들고 나온 이씨는 전에 알고 있던 여성단체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현재 그는 모 쉼터에서 한국인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시험을 준비중이다. 남편과는 이혼을 원하고 있다. 중국으로 돌아가도 맞이해줄 부모가 없는 그는 한국에서 직장을 잡고 혼자 살아갈 꿈에 부풀어 있으나 아직 겪어야 할 산이 많다.

외국여성들의 폭력피해 훨씬 더 심각

종교가 인연이 되어 한국남성과 결혼한 필리핀 여성 모씨(43)는 결혼한지 6년이 됐으나 최근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왔다. “생활비를 왜 안주느냐”는 말 한마디에 남편이 목을 조르는가 하면 수시로 때려 앓아 눕기도 수차례 했다는 것이 여성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아직 한국말이 능숙하지 않은 관계로 의사표현이 서툰 이 여성은 이혼과 두 딸의 양육비를 원한다는 내용의 ‘요구사항’을 정리해 가지고 다니며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고 있다.
또 일본여성 모씨(36) 역시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인연으로 한국남자를 만났다. 과거 한일간의 역사를 거론하며 ‘일본사람은 나쁘다’고 주장하는 이 여성의 남편도 틈만 나면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 그래서 유산이 되고 몸에 상처를 많이 입은 그는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 본인은 이혼을 원하지만 남편이 이에 응하지 않고 있어 숨어사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외국여성들의 폭력 피해는 내국인보다 훨씬 심각하다. 집을 나와도 현실적으로 신변안전을 보호받을 만한 쉼터가 많지 않고, 쉼터에 들어가더라도 지낼 수 있는 기간이 2개월에 불과한 형편.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 경우 1개월을 더 연장해 주지만 3개월은 너무 짧다는 것이 공통적인 여론이다. 따라서 이들은 보호기간의 연장과 외국인들이 겪고 있는 비자, 취업, 한국국적 취득시험 등의 ‘중대사’를 쉼터에서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있으나 인력 부족으로 이런 업무는 현재 엄두도 못내고 있다.
청주여성의 전화 손명희 부회장은 “무엇보다 한국남성들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외국여성이 농촌총각과 결혼해서 시골에 살 경우 이 여성은 일꾼취급을 받는다. 시부모 모시고, 남편 받들고, 짐승처럼 일 하는 것을 바라는데 중국은 우리보다 못살아도 여성의 지위가 높아 이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중국 등지에서 온 여성들의 목적이 한국 국적 취득이라며 처음부터 사기결혼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결혼생활이 행복하다면 이들이 왜 주민등록증만 손에 쥐면 집을 나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실제 과거 계획적으로 추진하던 중국동포 여성과 우리나라 농촌총각의 ‘짝짓기’가 실패로 끝난 이유도 한국인의 남존여비 사상에 있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무조건 결혼을 하고 보자는 식으로 외국여성을 데려 왔지만 여성을 무시하고, 학대하며, 일꾼 부리듯 하는 한국남성들의 ‘악습’이 끝내 두 사람의 행복을 지켜주지 않고 깨버리기 일쑤였기 때문. 또 일부 남성들은 이 과정에서 여권과 비자 등의 관련서류를 몽땅 빼앗은 뒤 이런 것을 가지고 횡포를 부리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여권은 ‘나뭇꾼과 선녀’에 나오는 ‘선녀의 옷‘ 같은 존재가 되어 본국으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국제미아까지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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