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장만 5번, 측근정치 30년 비화 고스란히
“7부 능선엔 적이 없다”…등장인물 100% 실명

정치부기자 10년을 거친 뒤 국회 4선 경력을 포함해 30년에 이르는 정치인생을 살아온 신경식 전 의원(13·14·15·16대 당선)이 자신의 70평생을 돌아보는 회고록 ‘7부 능선엔 적이 없다(2008년 10월27일·동아일보사)’를 썼다.

▲ 신경식 전 의원이 70평생을 돌아보는 회고록을 냈다. 이 책에는 신 전 의원과 관계를 맺어온 정치인, 경제인 등이 모두 실명으로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7부 능선엔 적이 없다’란 제목은 정상급 정치인들의 비서실장만 5차례나 역임한 신 전 의원의 정치철학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 전 의원은 책머리에서 제목에 대해 “비서실장이라는 자리는 무슨 큰 직함이 아니지만 정상급 정치지도자의 최측근으로서 결단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자리가 번번이 내게 돌아온 이유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책의 제목이 그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7부 능선엔 적이 없다’…”고 풀이했다.

사실 신 전 의원은 그렇게 ‘왕의 남자’로 살길 원했지만 진정한 왕의 남자가 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1973년 대한일보 정치부장 자리를 내놓고 정일권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비서실장을 맡고 당선 뒤에는 당 총재(겸임) 비서실장을 역임한 것.

이후 15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회창 후보 비서실장을 역임했지만 킹메이커가 되지 못하고 이회창 명예총재 비서실장으로 일하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구치소 신세를 져야했다. 신 전 의원은 이와 관련해 “인생의 막장이라는 구치소에 가보았다”며 다소 거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또 “수감되어 두어 달 남짓 조사를 받으면서 승자가 패자를 보복하는 치졸한 정치판의 양면성을 개탄하며 내 정치인생을 늦게나마 반성하고 정계에서 물러났다”고 회고했다.

‘창(昌)의 남자’였던 신 전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30인 고문단으로 지역유세 대열에도 동참하게 되면서 ‘다시 정계에 복귀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회고록으로 그와 같은 추리에는 종지부를 찍어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신 전 의원은 책머리 끝부분에서 “언론계와 정계에 바쳤던 40년은 휘몰아치는 광풍 속에서 정신없이 휩쓸렸던 시절이었고 지금은 그곳에서 튕겨져 나와 홀가분한 느낌이다. 이제는 정치면 기사를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고 평온하게 지낸다”고 소회를 밝혔다.

‘7부 능선엔…’은 40년 동안 겪은 정치적인 사건과 관련해 큰 줄기에서 떨어져 나온 비화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사건을 소개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이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실명으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의 정치인은 물론 경제인들까지도 친소에 관계없이 실명을 거론해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 변종석 전 청원군수와 인연
‘7부 능선엔…’에는 두 번의 낙선 끝에 13대 총선을 통해 민정당 소속으로 여의도에 등원하는 과정에서 변종석(2004년 작고) 전 청원군수와의 각별한 인연이 소개돼 있다. 치열한 공천경쟁을 벌이다 신 전 의원의 공천이 확정되자 지역에서 새마을회장, 반공연맹 간부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변 전 군수가 찾아왔다는 것.

당시 공천경쟁자였던 변 전 군수는 공천신청을 마감한 뒤 단양 구인사를 찾아가 2대 종정이었던 대충스님에게 ‘누가 공천을 받게 될지’ 물어봤고, 대충스님으로부터 12명의 신청자 가운데 ‘신경식이 되겠다’는 답변을 이미 들었다는 것.

‘7부 능선엔…’에는 이 일을 계기로 변 전 군수에게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달라”고 간청했고 축구선수 출신인 변 전 군수도 그 자리에서 “내가 책임지지, 한방에 넣어버릴게”라며 흔쾌히 수락하는 과정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결국 신 전 의원은 1만표 차의 압승으로 금배지를 달았고 당선자 등록 뒤 구인사 대충스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한참 후에 돌아온 스님의 답변은 “앞으로도 잘될 거야”였다고.

‘7부 능선엔…’에는 또 지역구인 청원에서 경쟁했거나 조력자였던 여러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14대 총선과 관련해서는 “전직 재선 의원인 김현수씨, 학생운동으로 투옥되어 고생한 운동권 출신 신언관씨 등이 야당후보로 출마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밖에도 김병국 전 청원군의회 의장, 손갑민 전 청원군의회 의원, 이병준, 민병상씨 등 각별히 지냈던 정치인들의 이름이 다수 등장한다.

수감시절 책 넣어준 경제인까지 거론
‘7부 능선엔…’은 회고록이지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기자와 정치인으로 평생을 사는 동안 신세를 졌던 지인들에게 이른바 ‘립(lip)서비스’를 하려는 목적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책이다.  

같은 청원 출신으로 육군대장에 3선 의원을 지낸 민기식 전 의원(7·8·9대 당선 1998년 작고)에 대한 회고담은 책 곳곳에 등장한다. 기인으로 통한 민 전 의원은 늘 조니워커에 탄산수를 타서 안주도 없이 마셨는데, 발가락을 주무르던 왼손으로 연신 얼음을 집어 자기 잔은 물론 상대 잔에도 넣어줬다고.

첫 출마에서부터 선거운동을 도와줬던 청주고 30회 동창들의 이름도 거론됐다. 동기회장인 윤태무 전 제천 부시장, 재경회장 정병소 전 주택은행 부행장 등은 경비를 염출해 사무실을 차려줬으며, 정진관 알파전자 사장, 남기대 전 충북대 교수 등도 선거전에 발 벗고 나섰던 동문들이다. 

2003년 말 17대 불출마 선언을 한 뒤 홀가분하게 새해를 맞았던 신 전 의원은 이른바 차떼기 정국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된 뒤 구속된다. 신씨 종친회 고문인 롯데 신 사장으로부터 10억원을 받아 소위 말하는 ‘실탄’을 100분의 1씩 지구당에 나눠준 것이 실정법에 위반됐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불법이지만 단 한 푼도 배달사고 없이 분배한 것이 확인되면서 두 달 만에 집행유예로 출소할 수 있었다.

신 전 의원은 ‘346명이 면회를 왔다’며 고마움을 나타냈는데 “선엔진니어링 오선교 회장은 책을 차입해줘 수감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선교 회장은 “신 전 의원의 동생과 친구사이라 신 전 의원과도 가깝게 지낸다. 그 당시 책을 넣어준 건 맞는데 어떤 책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이밖에도 여러 골프모임의 성격과 회원들에 대해서도 일일이 소개하고 있는데, ‘초우회’ 멤버로 청주지역 건설업체 동원건설의 송승헌 회장을 거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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