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봉 충북참여자치 시민연대 사무처장

시급한 민생현안 해결에는 무기력한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이 어찌된 일인지 100년이 넘게 유지되어 온 지방행정 계층과 구역 개편에는 상생의 정신을 발휘하여 신속한 합의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주민의견도 묻지 않고 지방행정구역 개편을 오는 2010년 지방선거 이전에 마무리하겠다는 과욕을 보이고 있다. 현재 논의 중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개편안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시·ㄱ를 통합하여 인구 60만~100만 규모의 광역시를 70개 내외로 설치하고 광역시·도(道)를 폐지하여 2단계인 자치계층을 1단계로 줄이자는 기본 방향은 일치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방행정 계층은 3단계에서 2단계로, 자치계층은 1단계로 축소된다.

현 지방행정구역은 100여년 전 교통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농경시절에 형성된 것으로 현재 광역-기초간 업무중복으로 인한 비능률, 지역주의 문제, 청주·청원같이 생활권과 행정권의 불일치로 인한 예산과 인력의 낭비, 인구감소로 인한 과소자치단체 증가 등 많은 문제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양당이 제시한 ‘70개 광역시 1계층제’안은 행정구역개편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자치단체 규모의 광역화는 풀뿌리 민주주의 후퇴와 주민참여 기회를 제약할 우려가 있다. 이질적인 행정구역간 통합과 자치구역의 광역화는 교통 통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접근성과 일상적인 참여기회의 확대를 가로 막는 장벽을 만들고, 다수 주민의 무관심은 지방정치에 있어 소수 지배엘리트 집단의 지방권력독점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다.

둘째,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중앙집권적 정치문화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다. 현 광역자치단체 하에서도 중앙권한 이양에 인색하고 지역의 중앙정부 종속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60만~100만 규모로 축소할 경우 지방의 중앙예속화가 심화되고 실질적 지방분권은 후퇴할 것이다.

셋째, 70개의 광역자치단체간 조정기능을 중앙정부가 일일이 행사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업무의 효율성을 이유로 권역별 국가 광역행정청이 설치될 수 밖에 없어 행정계층 축소의 효과는 사라지고 자치계층만 한 단계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넷째, 독립적인 자치단체로 존재하는 시`군`구 자치단체를 인위적으로 통합할 경우 지역간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고, 단체장 선거 때마다 소지역주의가 발호하고 인구가 적은 지역은 정치적으로 고립되거나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지역통합의 효과보다 지역갈등 유발효과만 키우게 될 것이다.

이처럼 뿌리가 다른 기초자치단체를 지역주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임의대로 통합하겠다는 것은 반자치적 발상이다. 특히 현재 논의되는 안은 주민참여 풀뿌리 생활자치를 하기엔 너무 크고 광역적인데 반해,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기엔 너무 작은 규모이다.

따라서 이상의 방향으로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하는 것은 주민참여도, 분권도 없는 절름발이 지방자치를 확대시킬 우려가 크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자치단체인 시겚틒구의 평균 인구규모(20만9942명)는 통합을 해야 할 만큼 작지 않다. 영국의 1.6배, 일본의 2.9배이며, 미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의 24~37배, 프랑스의 120배나 된다고 한다. 이런 시·군·국를 더 광역화하면 효율성 요구에는 부합하겠지만 행정구역개편의 기본이념인 민주성의 확보에 문제가 있다. 부분적으로 효율성이 있다 해도 주민참여와 자치, 분권과 자율이라는 지방자치의 기본원리가 침해된다면 이는 바른 방향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논의 중인 행정체제개편이 불합리하게 설정된 행정구역을 조정하고 자치권역을 생활권 단위로 재편하여 행정서비스를 개선하는 개편은 시급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행정구역 개편 방향이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의해 지역의 동질성·정체성 보존, 주민참여와 분권의 확대,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간 중복기능의 조정, 행정의 능률성확보, 사회적 갈등의 최소화라는 측면에서 대안을 찾지 않고, 중앙정부의 효과적인 지방통제와 국회의원들의 권한강화에 초점을 맞추어 추진된다면 지역민들의 저항으로 행정구역 개편논의는 좌초되고 말 것이다. 정부가 진정성이 있다면 지역주민의 관점에서 지방행정구역 개편이 논의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