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공학박사·건축사

약 8년전 일본에서 두 분의 손님을 맞이하여 가까운 미동산수목원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시 도심 속 산책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 분들의 성격을 고려해서 외곽의 산림으로 안내코져 했던 것이다.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천천히 걸으면서 담소를 나누고 박물관과 식물원도 돌아볼 만했으며 가끔 MTB을 타고 다니는 이들로 하여금 시원한 산림의 바람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 후로 그저 지나치는 것으로만 인지를 하고 그간에 변화한 모습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지난 개천절 하늘 열림과 같이 우리가족은 수목원의 열린 모습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으며 풍성한 하루를 지낼 수 있었다.

약간 늦은 듯한 오전이었지만, 이미 주차장은 만차에 가까웠고 트렁크를 열고 주섬주섬 피크닉 소품을 꺼내드는 가족들과 아예 그늘진 주차공간에 이미 자리펴고 김밥먹는 젊은 가족, 앞서 뛰어가는 자녀를 노모와 함께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중년부부, 현대인의 악세서리인 조그마한 디카를 흔들며 조용히 걷는 젊은 연인들, 이미 입구에서 임대한 자전거를 타고 싱싱 달리는 초교생들.

정문부터 벌써 분주하고 많은 가족이 입장하고 있는 와중에, 경기도에서 출발한 듯한 대형버스 5대가 뒤이어 들어오면서 정문의 청원경찰과 수목원직원들이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는데 애쓰는 모습으로 하여금 더욱 분주해 보인다.

8년전 만해도 모래로 뿌려진 대운동장이 구릉진 잔디밭과 소나무, 그리고 원두막과 바닥분수로 조성되어 가족들이 피크닉광장으로 활용하기에 더없이 충분했다.

인접한 산림과학박물관과 목재문화체험장, 생태체험관, 습지원, 고라니관찰원까지 걸어서든, 자전거페달을 밟고서든 여유있는 하루가 자연속 바람내음을 함께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더욱 생소했던 유전자보존원은 우리 산림의 자원유지와 생태보존에 의미를 크게 느끼게한다.

항상 바쁘고 서두르지 않으면 않되는 현대사회에서 가족과 더불어 삶의 속도를 자연의 땅과 환경 , 그리고 삶의 리듬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때론 필요하다. 미동산과 같은 숲이 도시에 있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정체되어 있다고 해서 발전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해서 도시개발을 억제하라는 것은 아니며 너무 급하고 너무 빠르게,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을 조금 뒤로 한 채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하겠다.

일본의 교토대 후노교수 (건축학전공)가 국제심포지엄 관계로 우리 청주를 처음 방문 했을 시 한국에도 천년의 고도를 지닌 교토시와 같은 도시형성이 보존되어 있는 청주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는 사견을 내보인 적이 있다.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무심천과 구도심에 잔잔히 깔린 건축물들은 지금의 교토시 분위기와 사뭇 유사하기에 표현했을 것이다.

주변도시들이 앞다투어 전면개발에 나서는 것에 뒤질세라 그에 따라갈 것이 아니라, 넘치는 것 보다 조금 모자라는 것이 후에 점진적 개발의 여지를 두고 공동체의 일부임을 느낄 수 있는 도시형성에 지루한 기대를 두고 싶다. 도시재개발, 재건축, 도시환경정비사업 등 화두에 오르는 커다란 사업들을 두고 우려하는 시민들도 적지않다.

지나친 음식의 열량은 신체 불균형과 성인병 즉 생활습관병등 비행청소년의 증가를 가져오는 두려운 사실을 현대인들은 이미 알고 있으며, 획일적이고 인위적인 그리고 주문 즉시 일회용 포장지와함께 제공되는 패스트푸드를 비롯한 현대문명에 특징인 경쟁과 속도에 비례하는 도시발전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것이며, 자극적이고 표준화된 상품과 같은 도시경관도 유전자 조작과 같은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되겠다.

자연의 속도 그대로 깨끗하고 맛있는, 올바른 먹거리를 추구하는 문화생활로 돌아가자는 취지의 문화운동으로서 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푸드’는 자연의 이치와 순환에 맞추어 천천히, 그리고 신선한 재료의 참맛을 되찾으면서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지속가능한 일련의 운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세계는 이미 과격한 변화와 도시발전을 늦추며 환경과 생명존중으로 회귀하는 변화의 과정에 있음을 인지하여야 하겠으며, 이제야 선진국의 과거 에 행한 과격한 변화를 답습하고자 하는 단순한 과시적 행위보다는 꽃을 심고 숲을 가꾸는 시간으로 좀 더 자연스런 삶의 리듬을 즐길 수 있는 마음에 여유를 차분히 안정시켜 보는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그 넓은 수목원을 차근차근 가꾸어가듯,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어 결실을 즐기는 농부의 자연에 절기를 순응하듯, 우리의 도시에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그때까지 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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