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이란게 있다. 이것은 마지막 보루다. '진심'마저 통하지 않으면 땅을 치게되고 가슴을 후벼파는 상처를 입는다. 하루종일 그랬다. 흥분되고, 화나고 짜증나고 이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고 많이 진정됐다. 돌이켜 본다. 혹 내 진심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위선을 떨지는 않았는지, 실수는 없었는지 말이다.

역시 '관계'는 복잡하고 어렵다.

자전거 경품주고, 상품권 돌리고 현금을 뭉턱뭉턱 안겨주는 그런 신문을 보지 말자는 켐페인을 진행하기 위해 사업장을 순회하고 있다. '경품주는 신문을 신고하면, 더 많은 포상금을 받을수 있다'며 조합원들을 선동한다.

아주머니 노동자가 연방 속웃음을 터트리며, 10만원자리 상품권을 받았다고 옆에 있는 동료에게 자랑한다. 아저씨 노동자는 상품권도 받고, 포상금도 받고 '꿩먹고 알먹는' 그런 방법은 없냐고 묻는다.

일단, 관심을 끌어모은 것 같다는 판단아래 같이 간 동료가 캠페인 취지를 열심히 설명한다.

우리, 민주노총이 좋은 신문 보기 '100+100' 운동을 결의했다. 이 운동의 요지는 간단하다. 부자들만의 입장이 아니라, 노동자 서민의 눈으로 신문을 만드는 그런 좋은 신문 중에서,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과 우리 지역에서 나오는 신문을 매월 100부씩 구독하자는 것이다.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중에서 좋은 신문으로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을 선정했다. 그런데 우리 지역 신문중 어떤 신문을 좋은 신문으로 선정하는 가에선 머뭇거려진다. 모두가 부담스러워 한다. 왜냐면 상처를 남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선정되지 못한 신문은 졸지에 나쁜 신문이 되는 거고, 그러면 우리는 거기서 일하는 언론 노동자들을 졸지에 나쁜 노동자로 모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섞여 나왔다.

그래서, 사실은 '좋은 신문', '나쁜 신문'과 같은 포괄적인 용어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하는 생각이 지나간다. 그러나 이미, 공개적으로 다 발표하고 난뒤의 때늦은 후회다.

사실, 우리가 좋다고 하는 것은 노동자의 입장에서다. 그래서, 우리가 '좋다'고 하는 것은 노동자가 보기에 '좋다'는 의미일뿐이다. 소수 재벌에게 특혜만 주고 노동자 서민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민영화' 정책에 비판적인 신문, 비정규노동자를 남발하는 현재의 노동정책에 비판적인 신문을 골라보자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신문을 선택하면서, '좋은 신문', '나쁜 신문' 이렇게 규정한 것은 분명 실수였다. 괜시리, 열심히 일하는 언론노동자들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를 성급함이었다.

그러나, 경품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무조건적으로 정권을 찬양하는 서울에서 나오는 그 신문들은 분명 나쁜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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