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철수 정치경제부 기자

얄궂은 날씨에 칼국수로 점심 한 끼를 해결했던 며칠 전이 생각납니다. 평소 허물없이 지내왔던 청주시 한 공무원과 부담 없는 점심식사 메뉴로 선택한 것이 바로 칼국수였죠.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도 칼국수를 좋아해 청와대 오찬에 자주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죠. 비가 한 차례 내린 터라 막걸리에 파전은 힘들더라도 얼큰한 칼국수 한 그릇을 하자는 심사였죠.

“처서가 지난 지 언제인데 무더위가 계절을 의심케 한다”는 얘기부터 “비 한 차례 내리니까 이제 새벽이면 제법 쌀쌀한 것이 가을이 성큼 다가 왔음을 느낀다”는 인사치레가 오고갔죠. 그런데 상대하고 나선 이 공무원이 무심코 건넨 말이 기자를 감동시켰습니다. “언제쯤이면 ‘사회복지사’나 ‘시민사회단체’가 없는 나라가 될까”란 얘기였죠.

어설피 들어서는 ‘소외계층을 돕는 일’이나 ‘세상이란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가는 일을 싫어하는 ‘염세주의자’ 내지는 ‘극우 보수주의자’의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 공무원의 연이은 말에 평소 기자가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았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정부의 사회보장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소외계층을 돕는 사회복지사도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도록 견제하는 시민사회단체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얘기였죠.

이 말은 다시 말해 “모든 것이 잘 갖춰져서 잘 굴러 가는데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복지사나 시민사회단체가 왜 필요하겠냐”는 말입니다. 청주시는 지난 한 주 인사잡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5개 실국별로 추천한 사무관(5급) 승진 대상자가 20여명이나 이르렀고 이 중 5명이 실제 사무관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런데 한 승진 대상자는 근무평정과정에서 승진 대상자에 대한 우선순위 조작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경력이나 근무평정, 가점 등을 고려할 때에 도저히 승진할 수 없는 사람이 승진을 했다는 얘기였죠.

또한 ‘근무평정 규칙’을 어긴 청주시장을 나무라는 말도 아끼지 않았죠. 최종 임용권자인 청주시장은 실국 승진대상자의 근무평정자도 확인자도 될 수 없다는 얘기였죠. 그런데 억울함을 하소연 한 해당공무원은 청주시장이 근무평정자인 실국장과 확인자인 부시장이 해야 될 일을 먼저 챙기면서 규정을 어겼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또 경력과 성별에 따른 인사안배가 적절하지 않았음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인사가 만사’라 생각하는 또 다른 공무원은 업무부서별 경력과 근무평정에 따른 인사안배 없이 특정지역 인사나 특정부서 끌어주기 식의 인사는 신뢰성을 잃고 잡음이 끊이지 않기 마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더욱이 균형감 잃은 인사는 열심히 일하는 격무부서 공무원들의 일할 의욕마저 꺾어 놓아 결국 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란 얘기였죠.

인사의 투명성 하나 확보하지 못해 끊임없이 잡음이 섞여 나오는 청주시를 보면서 시민사회단체와 사회복지사가 없는 날을 꿈꾸는 공무원의 고민이 해결되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어느 공무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사는 지방정부의 한 부서 업무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뢰받는 인사행정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견제 받지 않는 지방정부를 꿈꿀 수 있겠습니까. 비오는 날 서민들의 가슴팍을 따뜻하게 뎁혀주는 얼큰한 칼국수처럼 지방정부가 모두가 공감하는 행정을 펼쳐줄 때에 사회복지사나 시민사회단체도 필요 없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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