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선 충주대 교수

절반에 가까운 서울시민이 1년간 교양서적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책이라고 하면 만화책에서부터 처세학을 다루는 장르까지 다종다양하기 때문에, 문학, 예술, 역사, 철학 등 삶에 대한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교양 영역의 독서는 절대 부족한 실정으로 보인다.

요즘엔 만화책도 상당한 철학과 역사, 또는 특별한 장르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창작되기도 해서 중요한 문화콘텐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0대 청소년의 경우 주로 인터넷, 게임(44.7%)과 TV 시청 등(17.8%)이 여가활동의 주요 아이템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매체 영상물들은 독서가 갖는 기능만 못하다. 독서는 사물과 역사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시켜주고 많은 감동과 교훈을 주어 사유의 세계를 넓혀준다.

우리 이웃 고장에는 백곡 김득신 선생에 관한 독서 일화가 많다. 그 분은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이름 할 정도로 다독(多讀)을 즐겨한 시인이다.『한서』와 한유, 유종원의 글을 모두 베껴 만여 번이나 읽었고, 그 중「백이전(佰夷傳)」을 가장 좋아하여 1억1만3천 번을 읽고 서재 이름을 억만재로 지었다 한다. 당시 1억은 10만이라니 11만 3천 번을 읽은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당대의 독서왕이었던 백곡선생이 현대인들의 무독서 풍조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생각해 본다.

영화나 게임은 우리들의 상상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하지 못 한다. 각 영상들의 편린은 즉자(卽自)적 의식 상태에 머물게 하고, 우리들 의식 속에 한낱 그림자로 떠돌다 스쳐지나가고 만다. 그러나 문자에 의존하는 독서는 다르다. 문자가 갖는 가장 강한 힘은 상상력의 힘이다. 상상력은 자존의 힘이고 생존의 힘이다. 활자의 숲을 헤매다 보면 작가의 상상력에 힘입어 독자의 상상력도 활성화되고, 독자는 오히려 작가의 식견보다 뛰어난 자기세계를 확보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대해 열린 마음, 세상을 열어가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 독서다. 세상을 열어가는 것은 마음, 정신, 내면 혹은 내공의 힘인 것이지 몸의 힘이 아니다. 영상의 시대, 이미지의 시대는 몸짱, 얼짱 등 몸철학을 생산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그림자의 세상일 뿐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힘은 자신의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사유의 힘이다. 사유의 힘-그것은 곧 삶을 바라보는 식견(識見)이다.

우리 이웃나라의 시인 중 장조(張潮)라는 이는 독서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을 완상하는 것과 같으니/ 다 그 사람의 지나 온 길의 얕고 깊음에 따라/ 다만 얻는 바의 얕고 깊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젊은 시절은 인생의 미래에 대하여 많은 꿈을 키우는 때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어떻게 훈련하고 상상하느냐에 따라 다른 길이 준비될 것이다. 뜰에서 달을 바라본다는 것은 삶의 한가운데서 사업이든 생활이든 자신의 의지로 경영해 나가는 중년의 과정을 말한다. 이와 같이 독서의 단계는 나이에 따라 그 격을 달리 하는 것으로 때로는 지혜의 보고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인생의 향도(嚮導)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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