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가 겪어본 '21세기' 지방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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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사회가 변하고 있다. 민선시대가 10년차를 향해 가는 동안 풀뿌리 민주주의의 완성도도 갈수록 물이 오르고 있다. 일부 선출직이나 고위 공직들 사이에서는 불미스러운 금품 수수나 법규 위반 등으로 인해 볼썽 사나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원칙을 중시하는 공무원상이 실현되고 있다. 불과 일이십 년 전까지만 해도 호적등본 같은 행정서류를 떼려면 못해도 담당 공무원에게 박카스 한 박스는 들고 가야 별 탈 없이 일이 해결되는 시절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오늘처럼 깨끗한 공직 문화를 조성한 공무원들의 노력에 새삼 머리가 숙여진다. 그런데, 우리 공직사회에는 과거에 만연했던 부정부패의 그늘이 일종의 컴플렉스로 작용해 창의적인 상황판단을 스스로 제약하고, 기계적인 원리원칙에 스스로를 얽어매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누가 봐도 당연히 '바람 풍' 해야 옳을 일을 그들만의 규정과 원칙에 갇혀 '바담 풍'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기자는 지난 7월 중순 경 사적인 모임으로 충주의 봉황리 자연휴양림에 18, 19일 양일 간 사용할 10명 수용 규모의 시설을 예약했다. 실제 이용객은 5명에 불과했지만, 가급적 여유롭게 시설을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동료들의 권유로 20평 가량의 큰 방을 예약한 것이다. 예약 당일이 돼 봉황리로 이동 중이던 기자에게 봉황리 사무실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새벽부터 내린 장맛비로 인해 휴양림 진입로가 통제돼 이용이 불가능하게 됐으니 예약금을 환불해 주겠다는 얘기였다. 도착 예정 시간을 불과 한 시간 여 앞둔 시점에서 뜻하지 않은 낭패를 겪은 기자는 봉황리 측과의 협의를 거쳐 충주시가 운영 중인 또다른 휴양시설인 계명산 휴양림에서 같은 규모의 방을 사용하는 데 합의했다. 한 시간 여 후, 새 목적지인 계명산에 도착했다. 행정 처리를 위해 제일 먼저 사무실을 들렀다. 행정절차를 위해 기자와 마주앉은 계명산 휴양림의 관리담당 공무원은 먼저 우리 일행의 인원수를 점검했다. 이 공무원은 5명에 불과한 우리 일행이 불필요하게 20평짜리 건물을 예약한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7평짜리 통나무집을 권했고, 우리는 그 공무원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하며 흔쾌히 7평 건물로 짐을 옮겼다. 물론 이용료도 14만원에서 5만원으로 절약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 공무원은 봉황리 자연휴양림에 양해 전화를 해 허락을 받는 꼼꼼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대뜸 기자와 통화를 원한 봉황리 휴양림 쪽 공무원의 얘기가 가관이었다. 낮에 물이 빠져서 봉황리 휴양림 진출입로가 다시 개통됐으니, 그리로 다시 오라는 거였다. 거리나 가까우면 모를까 승용차로도 30~40분이나 걸리는 계명산에서 이미 행정 수속까지 마친 사람들을, 그것도 저녁이 다 지난 시간에 다시 오라니... 정중히 거절한 기자에게 그 공무원은 2~3번 계속 무례한 요구를 고집했고, 결국 화가 난 기자의 항의를 듣고서야 그 공무원의 억지는 멈추어질 수 있었다. 그로부터 3~4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봉황리 공무원에게서 휴대전화가 걸려왔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실로 어처구니 없는 억지 그 자체였다. 그 공무원 주장의 골자는 우리 일행이 당초에 20평 짜리를 예약했다가 임의로 7평 방으로 숙소 규모를 바꾼 만큼 20평 대여료 14만원을 모두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을 바꾼 것은 당신과 같은 부서인 시청 산림녹지과 소속 계명산 휴양림 담당 공무원의 권유에 의한 것이고, 사전에 계명산 휴양림에서 전화로 봉황 휴양림에 양해를 구해 확정이 된 일이며, 이미 7평 건물에서 숙박을 하고 있는 이상 책임질 일이 있으면, 계명산 휴양림 공무원과 해결하라"는 기자의 일관되고도 당연한 답변에도 불구하고 이 공무원은 "어쨌든 애당초 계약이 20평 짜리였으니 7평 방에서 자는 것은 자유지만, 사용료는 무조건 20평 값인 14만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억지로 일관했다. 나중에 봉황리 휴양림 관계자의 해명과, 그 무례한 공무원의 억지 사과로 문제가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초등학교 2~3학년 수준의 양식에서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을 '바담 풍' 식의 억지로 그르치고 만 그 공무원의 한심한 처사에 씁쓸한 여운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 7월 24일. 제천시청. 사업 관계로 민원실을 찾은 기자는 또 하나의 웃지 못할 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시청 민원실 자동민원 처리기에서 자신 소유 부동산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본 60대의 한 어르신이 민원인 전용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분의 정확한 이름은 알 길이 없지만, 함자 중간에 '영' 자가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통화내용을 짐작컨대, 법원이 등기부등본을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그분 소유 토지 2필지 중 한 곳의 등기부에 '영'이 아닌 '구'자를 새겨넣었고, 뜻하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은 어르신이 법원 담당 직원에게 이의 정정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이 초로의 어르신은 법원 담당자에게 시종 정중한 어조로 이름 표기가 잘못됐으니, 시정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전화 저쪽에서 들려오는 답변은 무조건 법원을 방문해서 절차를 거치라는 얘기였다. 본인 확인을 해야 잘못 작성된 이름을 정정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 듯 싶었다. 이쪽 어르신의 표정과 목소리는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내가 틀리게 적은 것도 아니고, 등기부등본 원부에 길 '영'자로 돼 있는 것을 당신들이 잘못 읽어서 '구'자로 오기한 것 아닌가? 더욱이 법원에서 원부를 대조해보면 '영'자가 맞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을 일인데, 굳이 본인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가 뭔지 답답하다." 그러나, 법원 공무원의 마이동풍은 변할 줄 몰랐고, "당신은 법원 공무원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 이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계속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어르신의 분노에 찬 질책도 그 공무원의 '바담 풍'을 바로 잡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답답했다. 우리 공직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도대체 자기들이 7평 짜리 방을 권유해 놓고 20평 짜리 이용료를 고집하는 그들의 원칙이란 무엇일까? 자기들이 잘못 읽어서 발생한 문제라면 사과하고 정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거늘 적반하장 격으로 무조건 본인이 와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우겨대는 오기와 오만은 또 어떤 원칙에서 온 결과일까? 기자는 이 두 가지의 사건을 일주 간격으로 겪으면서 형식적인 원칙, 면책을 위한 무소신의 원칙이 우리 공직사회에 또다른 유형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합리적인 융통성, 창의적인 원칙. 두 명의 공무원을 접한 후 기자는 새삼 이런 단어들이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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