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중심 김남균 민주노총 비정규사업부장

▲ 민주노총 김남균 부장사진 = 육성준 기자
故 정진동 목사, 김재수 우진교통 대표. 70년대 이후 충북지역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상징적인 인물이다.
정 목사가 도시산업선교회를 이끌며 지역 노동운동의 단초를 마련했다면 김 대표는 민주노총의 산증인으로 양적 질적 성장과 함께 우진교통이 노동자자주관리기업으로 재탄생하는 중심에 있었다.

이들의 뒤를 이을 차세대 노동운동가 중 대표적인 인물이 김남균 현 민주노총충북본부 비정규사업부장(38)이다. 김 부장이 노동운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 대학을 졸업한 뒤 민주노총이 설립한 실업지원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부터다.

학생운동 출신이긴 했지만 당시에는 노동운동을 선택하기에는 객관적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소련이 해체되고 남북관계도 급진전되면서 진보와 보수, 민주와 반민주의 구도가 흐려졌으며 현장에 투신했던 활동가들도 하나둘 새로운 삶을 찾고 있었던 때였다.

하지만 김 부장은 충북대병원노조 실무자로 파견을 자처했으며 2001년부터 민주노총 대외협력 업무를 맡아 연대사업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했다. 김 부장이 노동운동가로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노조가 경영권을 넘겨 받아 노동자자주관리기업으로 탄생한 우진교통의 이사로 참여하면서 부터다.

김 부장 본인은 17억원의 은행부채에 대한 보증 때문에 참여한 것이라고 둘러대지만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김 부장은 “10년 후에도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면 잘못된 선택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한자리에 있으니 당시 선택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노동운동 10년 동안 가장 뿌듯햇던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호죽노동인권센터를 만든일이라고 서슴없이 답했다.
그는 “비정규직이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갖가지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데 이들을 지원할 장치가 아쉬웠다. 조광복 노무사님의 참여와 기존 노조의 후원으로 월 600만원의 운영비를 마련해 설립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를 평생 동안 짓누를 멍에는 역시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지회 사태. 그는 “열심히 싸웠지만 부족한 준비와 섣부른 판단으로 아니한만 못하게 됐으며 조합원 모두 전국으로 뿔뿔히 흩어지는 참담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다시는 이와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가슴 깊이 곱씹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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