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회 충북적십자사 회장·충청리뷰 전 발행인

▲ 김영회 충북적십자사 회장·충청리뷰 전 발행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헐레벌떡 일어나 벽장문을 열고 어머니가 장에서 미리 사다 간직해 놓은 검정 고무신을 꺼내 신습니다. 그리고는 아래, 위방을 왔다 갔다 하며 새 신발을 신은 기쁨을 만끽합니다. 당연히 장롱 속의 새로 만든 무명양복도 꺼내 입고 즐거워합니다.

추석이나 설이 가까워 오면 언제고 그렇게 했습니다. 1940년대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이어서 1년에 두 차례 명절, 추석이나 설이 돼야 새 옷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슬비슴’, ‘추석비슴’이라고 불렀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손에서 자란 우리 삼남매는 예닐곱 살 되던 해부터 아이들끼리 할아버지, 아버지 제사를 지냈습니다.

어렵사리 차린 제상 앞에 서서 우리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술 따라라”하시면 술 따르고 “절해라”하시면 넙죽 엎드려 절했고 “수저 올려라”하시면 또 그렇게 했습니다.
제사가 끝나면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는 밖으로 뛰어나가 동네 아이들과 새 옷을 뽐내며 재미있게 놀곤 했습니다.

그 무렵 어머니는 자주 어린 우리 삼남매를 꿇어앉히시고는 야단을 치시곤 했습니다. 싸리가지를 잘라다 사진틀 뒤에 꽂아 놓은 회초리로 어머니는 때리곤 했습니다. “제발 나가서 애비 없는 호래자식소리 듣지 말고 이 에미 욕멕이지 마!” 언제고 어머니는 같은 말을 하셨고 그럴 때 마다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나는 어른들에게 꾸벅 꾸벅 인사를 잘 했습니다. “진지 잡수셨슈?”, “진지 잡수셨슈?” 어른들만 보면 큰 소리로 열심히 인사를 했습니다. 어떤 때는 금방 만난 어른을 또 만나도 “진지 잡수셨슈?”하기도 했고 뒷간에서 나오는 어른에게도 “진지 잡수셨슈?”하고 힘찬 소리로 인사를 했습니다. 그 바람에 동네 어른들은 어린 우리 형제에게 “그 집 애들은 싹수가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명절은 아이들에게 그야말로 좋은 날 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새 옷을 입을 수 있으니 좋았고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정말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날그날 연명하기도 쉽지 않은 부모들은 명절이 다가오면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자식들 옷 해 입히랴, 제수 장만하랴 걱정이 컸기에 “아이구. 이놈의 명절, 호랑이도 안 물어가나”하고 탄식을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 삽화 = 연규상

“그 느므 명절이 오면 옷 해 입혀야지, 제사꺼리 사와야지, 웬수같았어.
그래 호랭이두 안 물어 가느냐구 했었지.”
“그럼 지금은 어때유?”
“몰러,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느 사이 어머니 눈에는 이슬이 맺히는 게 보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내년이면 아흔여덟 살이 됩니다.

세상이 살만해진 지금 60여 년이 훨씬 지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이긴 하지만 오늘 날도 생활이 쪼들리는 서민들은 지난 날 우리 부모들이 겪었던 고통을 그대로 되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추석은 멀리 신라시대부터 1300여년을 변함없이 전해오는 민족 고유의 명절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애처로운 노래는 지난 시절 이 땅의 민초들이 얼마나 배를 주리고 살아왔던가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눈물겨운 ‘희망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추석이 내일 모레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자주 늙은 어머니와 옛날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어머니, 그때는 명절이 되면 걱정이 많았지유?…” “그랬지…, 그 느므 명절이 오면 옷 해 입혀야지, 제사꺼리 사와야지, 웬수같았어. 그래 호랭이두 안 물어 가느냐구 했었지” “그럼 지금은 어때유?” “몰러,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느 사이 어머니 눈에는 이슬이 맺히는 게 보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내년이면 아흔여덟 살이 됩니다.

요즘 따라 많은 세월이 흐른 것을 절감합니다. 때때로 “참으로 멀리 왔구나”하는 생각을 갖곤 합니다. ‘산천은 의구하다’지만 상전벽해로 세상은 많이 변했고 ‘인걸은 간 곳없다’듯 사람들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미 세상은 어제의 그 세상이 아니고 사람 또한 어제의 그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명절이 와도 즐거운 줄을 모릅니다. 옷도 잘 입고 먹을 것도 지천이라 그런지, 그저 그래 보일뿐입니다. 그럼 그 옛날 명절이면 즐거워 뛰놀던 아이들, 지금 그 어른들은 어떨까요. 좋을까요?

명절은 고향을 떠나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 혈육들이 잠시나마 한 자리에 모인다는데 뜻이 있다 하겠습니다. 어수선 하기만한 세상, 마음 둘 곳 없는 현대인들에게 조상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고향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명절은 의미가 깊습니다. 그러기에 고생길 마다않고 앞 다퉈 고향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지.

추석 대 보름 휘영청 둥근 달처럼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그렇게 밝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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