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문화헌장이 남성적이다.' 그 원인은 '문화헌장 제정위원들의 성인지적 감각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충북문화헌장 공청회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까 양성평등 의식이 문화헌장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기가 탁 막혔다. 이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문화약자와 문화소수자들을 위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시작한 문화헌장이 결국 그렇게 보였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논란이 된 부분은 "충북 지역문화에는 조화와 균형을 미덕으로 삼았던 사람들의 중용사상과 충효절개의 선비정신과 불의에 저항하는 진취적인 기상이 담겨 있으며"라는 문장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중용사상, 충효절개, 선비정신 등이다. 이것이 바로 봉건가부장제의 상징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제정위원회는 여러 가치를 균형 있게 담았으므로 이런 표현이 여성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성계에서는 충북문화헌장은 양성평등의 성인지적 관점을 가진 여성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충북문화헌장 문안이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문화헌장 제정팀은 할 말이 없다. 문화헌장의 내용이 약자와 소수자를 존중했다고 하더라도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여성계는 물론, 중세 봉건유교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역사는 사실이기 때문에 당대의 가치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열린 마음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봉건시대에 여성을 억압했던 가치를 미래에도 존속, 보전하자는 것에 반대할 뿐이다.

한편 이 말을 듣고 있던 분들은 봉건유교의 가치는 문화사적 사실이고 그것이 충북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므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을 여성의 억압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으로 해석하여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충북문화헌장 제정팀은 난처해졌다. 양립불가능성(incompatibility)을 양립가능성으로 수렴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치가 충돌할 때 지혜롭게 조합하는 것이야말로 충북인의 지혜 아닌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문화헌장의 정신이다. 그 사회가 바로 문화사회(cultural society)이고 그런 국가가 문화국가이며 그런 세상이 문화세계이다.

다소 이상적인지 모르지만 그런 이상과 꿈을 실현하자는 약속이자 지표가 바로 충북문화헌장이다. 그래서 문화헌장 문안 작성 때 약자 소수자 이주민들의 권리증진에 각별히 유의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헌장이 가부장제의 남성 지배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니 기가 막혔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배와 피지배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인간은 문화적 야수(野獸)일 뿐이고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서 조종되는 동물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성이 약자라고 느끼는 한 여성들의 권리를 증진해야 하며, 장애인 이민자 등 소수자들이 진정으로 충북사회의 주인이 될 때까지 그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제정위원회는 어떻게 하든 여성과 소수자 약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충북문화헌장의 주인은 충북인, 나아가 한국인 전체이기 때문이다. 단지 심부름을 하는 제정위원회는 그런 소중한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작성된 충북문화헌장은 오는 10월 18일, 충북인의 이름으로 국가와 민족 그리고 세계를 향하여 낭독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